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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이따금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데 그들은 내가 대구 출신이라는 걸 알면 꼭 약속이나 한 듯 한때 융성했던 대구의 경제와 문화를 들먹이고는 한다. 이야기는 대구가 몇 차례나 정권을 창출한 권력의 중심이었으며 섬유와 미인, 사과의 도시였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세련된 서울 사람들의 매너에 감사하면서도 이제 대구가 과거 화려했던 영화나 들먹이며 살아가는 퇴락한 도시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나는 사방이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랐다. 탱자나무 울타리의 과수원은 꽃이 피고 지고 과일이 익어가는 탐스러운 숲이었고, 성역이었다. 엄마를 따라 사과를 사러 과수원에 가면 나무 아래 수북하던 낙과와 높이 쌓여 있던 궤짝들, 창고 안의 잘 익은 사과 향기로 숨이 막힐 듯했다. 시인 셸리는 썩은 사과를 책상 위에 두고 시를 쓴다고 했던가. 일찌감치 떨어져 멍이 들거나 익을 대로 익어 썩어가는 사과 향기를 맡으면 나른한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큼큼한 짚 냄새와 송판으로 만든 사과 궤짝 냄새가 섞여, 높고 건조한 창고는 어린아이에게 웅대한 세계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 대구미술관에 간다. 도심에서 비껴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미술관에 가면 잠시나마 일상을 접을 수 있어서 좋다. 대구에서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장소가 이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유명 미술관에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 높은 작품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공간의 아우라도 대구미술관이 가지는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작가 타다시 카와마타가 사과상자를 소재로 대구를 상징하는 거대한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9천여 개의 나무상자가 차곡차곡 쌓이고 천장에 줄줄이 매달려 한때 능금처럼 주렁주렁 익어가던 대구의 향수를 짙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만히 다가가 나무상자의 냄새를 맡아본다.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환기력은 강하다. 빈 궤짝마다 가득 담긴 옛 이야기들이 넓은 공간에서 수런거리고 있는 것 같다.
타다시 카와마타의 설치작품을 살펴보는 도중, 지금의 대구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서영처 <시인·영남대 교책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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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구미술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9/20120912.0102007265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