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추석을 지내면서

  • 입력 2012-10-04  |  수정 2012-10-04 07:19  |  발행일 2012-10-04 제19면

한가위가 지나갔다. 도로를 가득 메운 귀성차량은 사라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은 살갑기만 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기별도 없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된 친구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뒷자리에서 여자친구의 놀이기구를 빼앗아 달아나던 일, 나를 놀리기 위해 책상에 그려놓은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던 일 등 모든 기억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저장됐다.

시골마을에는 추석을 전후해서 가을운동회가 열리곤 했다. 당시엔 가을운동회가 마을축제로 펼쳐졌고, 학생은 양 진영으로 나뉘어 경쟁을 벌였다. 마을의 모든 어르신도 그렇게 서로 경쟁하면서 목이 터져라 아이를 응원해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년 내내 명절 다음으로 걸판지게 놀아보는 한마당 잔치가 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셈이었다.

필자는 성주에서 이같은 추억을 켜켜이 쌓아가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최근 들어 방송인으로 시골마을을 찾을 때면 폐교가 된 빈 교정을 만나곤 한다. 그 때마다 한땐 동네의 모든 대소사가 이 운동장에서 펼쳐졌으리라 상상하게 된다. 잡초가 가득한 을씨년스러운 교정은 현재 시골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녹슨 철봉대는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들의 흔적을 날려버린지 오래라고 암시하고 있다.

폐교의 운명에서 놓여난 현재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도 열기가 식은 탓에 아이들의 행사로만 전락했다. 그나마 이같은 분위기를 위로하기 위해 졸업생들이 추석 전후로 모교 교정에서 동창모임을 왁자지껄하게 벌이는 것으로 마을축제가 대체됐다. 이런 가운데 시골의 풍습도 세월이 흐르면서 정보다는 돈으로 대체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안타까움이 더해 갈 뿐이다.

한기웅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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