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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짧아지고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가을이 되면 부쩍 나이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20·30대에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무척 조바심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런 조바심이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체념 내지는 인생이 별 거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만나게 되는 친구나 동창들을 통해 거울을 보듯 자신의 모습과 나이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나이를 심각하게 느낀 것은 어느 날 나도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을 때부터였다.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간절한 것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이대로 안주하고, 만족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상태에 왔다는 의미다. 한때 가장 경계했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두리뭉술한 상태가 되어가는 것이 나이드는 것이라니. 하지만 스스로를 덜 볶게 되다보니 마음이 넓어지고 부드러워지고 편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대신 예전엔 윗세대의 외국어 발음을 촌스럽다고 비웃었는데, 이젠 아랫세대가 내 발음을 조롱하고 있다. 또 내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지식을 아랫세대는 아주 특별한 지식으로 생각하거나, 그들의 상식을 내가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예전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지를 못했는데, 이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먹게 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후덕해져 가는가 보다. 이럴 때 또다시 나이 드는 것을 실감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청년시절에 올라가던 언덕을 같은 속도로 올라갈 수 없을 때, 눈에서 매혹적인 빛이 사라질 때, 승부는 끝나버렸다고 느끼게 될 때 잠시 잠깐 만에 노인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언젠가 나도 노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청년의 왕성한 호기심과 수줍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 또 누가 뭐라 해도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성과 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간다면 나이 드는 것도 과히 나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서영처 <시인·영남대 교책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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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이 들어간다는 것](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10/20121017.01022072746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