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라디오와 클래식

  • 입력 2012-10-19  |  수정 2012-10-19 07:36  |  발행일 2012-10-19 제18면
[문화산책] 라디오와 클래식

한때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라디오를 켜는 일이었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라디오와 함께 시작되었다.

고전음악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풍월당’이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수년 전 몇몇 지인과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는 2층에 자리잡은 이 곳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로 가득한 거리에 있는 이 곳의 2층 입구에 들어선 순간, 귀에 익숙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귀에 들어왔다.

어렸을 적 내종형제 중에 피아노를 하던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콩쿠르에 나가서 큰 상을 받을 정도로 재주도 있었는데, 상급학교로 진학하고나서 그만두었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끌리듯 빠져든 적이 있었다. 특히 바이올린 선율이 너무 좋아 부모님께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그 당시 형편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모두가 송창식의 ‘왜 불러’를 불러대던 시절, ‘이(齒)가는 소리 그만 끄라’는 잔소리에 굴하지 않고 반항하듯 라디오 볼륨을 높이다가 맞기도 많이 맞았다. 그 때가 내겐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였다.

어린 시절엔 꿈도 참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꿈을 좇지 않은 게 살짝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 시절 대부분의 희망사항은 이루기 힘든 꿈에 불과했다.

나에게 있어서 클래식이 삶을 기름지게 하고, 풍족하게 해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철없던 시절 현학에 물들어 작곡가와 작품번호, 음악의 빠르기 순서를 달달 외워 무언가를 많이 아는 척한 기억에 대해 반성한다. 책을 읽어도 누군가에게 뒤지기 싫어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분량으로 남을 기죽이려 했던 지난 날도 반성한다.

또한 음반을 수집한답시고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의 음반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이따금 친구에게 자랑한 것도 반성한다. 천박한 지식과 밑천에 혹시라도 상처받은 친구가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금 나는 티볼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KBS FM을 듣고 있다.

허성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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