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음악에 취하고 싶다면…DJ 유진혁의 찌짐집

  • 입력 2012-11-02   |  발행일 2012-11-02 제35면   |  수정 2012-11-02
20121102
대구MBC FM ‘별이 빛나는밤에’ 인기 DJ였던 유진혁씨가 운영하고 있는 ‘음악이 있는 찌짐집’ 전경.

짠한 소문이 났다.

‘대구교통방송 인기 DJ 유진혁이 최근 수성구 황금동에서 찌짐집을 냈다’고. 수소문 결과 사실이었다. DJ 품은 찌짐집? 어떤 표정일까.

KBS대구방송총국 정문 남쪽길로 곧장 올라가면 김대건성당이 보인다. 100여m 못 미처 있는 커피숍 같은 찌짐집. 주변은 온통 아파트숲이다. 가게 입구에 그의 이름이 없다. ‘유명세’를 팔지 않겠다는 의지랄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윤형주의 그 시절 버전 ‘우리들의 이야기’가 찜질방 열기같이 확 들이친다.

대구 도심 속 2012년 가을을 캐러 다니느라 잔뜩 무거워진 몸이 갑자기 열기구 같이 떠올랐다. 기자는 가만히 창가에 앉아 유진혁이 찌짐 부치는 아내를 도와주는 모습을 훔쳐봤다. 통유리창 밖으로 한창 울긋불긋해진 소공원에 자주 눈을 줬다. 까르륵대는 단풍들~.

주방에서 나온 그가 음악을 바꾼다.

순식간에 홀 빛깔이 달라진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와 대구MBC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뮤직인 프랑크 프루셀악단의 ‘안녕 졸리 캔디’(Adieu Jolie candy)와 ‘머시 체리’(Merci Cherie·cherie)가 연이어 안개같이 피어오른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일요일.

손님은 딱 한 팀, 50대 초반의 남성 두 명뿐이다. 그래도 쓸쓸하지 않다. 둘은 술보다 음악 때문에 더 취하고 있었다. 절절한 대목에선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이제 다시 갈 수 없는 그 추억의 가을날, 한껏 그리워하며 황홀해 보려 하는 것 같았다.

천장에는 큼지막한 소품형 전자기타가 붙어 있다. 입구 왼쪽 벽에는 송창식·서유석·김세환·윤형주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그 옆에 그 시절 노모가 봇짐을 지고 가는 사진도 있다.

유진혁이 털털한 자태로 다가왔다.

“제가 누군지 내색하지 않아요. 알아줘도 몰라줘도 그만이죠. 단지 저는 찌짐집 주인입니다. 다만 그날 기후에 딱 맞는 빛바랜 음악을 적재적소에 투입하죠. 실수없이. 그럼 즉각 반응이 팍팍 옵니다. 예전 얼굴 모르는 불특정 청취자를 대면할 때보다 더 설레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가을, 그 시절 통기타 세대는 단풍만으로는 만족을 못 합니다. 딱 부족한 1%는 아날로그 음악이 해결해준다고 믿어요.”

그는 음식(입)과 음악(귀)은 절대 거짓말을 못 한단다.

DJ활동 중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고 패스트푸드에 방치한 결과 악성 아토피에 걸렸고, 그게 맘이 아파 뒤늦게 아이를 위해 요리를 배웠단다. 그래서 이젠 ‘요리사 유진혁’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고추부추전, 배추전, 해물전, 호박깻잎전, 늙은호박전, 바지락전, 두부전, 굴전…. 10여종의 찌짐을 낸다. 일요일에는 아내가 주방을 맡는다.

“가을이 오니 저희집이 더 주목받네요. 지난주 토요일 종일 가을비가 내렸죠. 원래 새벽 한 시, 문닫을 시각에 기분좋게 취한 교수와 한 제자가 제게 다가와 정태춘과 박은옥이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를 꼭 듣고 싶다고 간청하더군요. ‘손님을 위해 올인하겠다’고 시작한 찌짐집이기에 소원을 들어주었죠. 한 곡이 끝나자마자 얼마전 타계한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을 추가하더군요.”

주방 입구에 CD 보관장이 냉장고처럼 서있다.

계산대 옆에 뮤직박스가 있다. ‘동백아가씨’도 이미자가 16세 때 부른 버전을 들을 수 있다. 배호의 전곡은 물론 일반인들에겐 조용필의 노래로 잘못 알려진 나훈아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장계현의 오리지널 ‘나의 20년’, 사월과 오월의 ‘등불’과 ‘옛사랑’, 1991년 11월 서울음반에서 나온 송창식 음반 속 ‘나그네’ ‘밤눈’ ‘비와나’ ‘꽃새눈물’ 윤형주의 ‘비의 나그네’와 ‘For the good time’을 빗소리 들리는 통기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밖이 어둑해진다. 실내의 주황색 등이 더욱 넉넉해 보인다.

취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 그가 기자에게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내밀었다. 다시 앉아 막걸리를 마실 수밖에.

이 가을, 찌짐집 주변 단풍은 거꾸로 파랗게 ‘회춘’(回春)하겠네. (053)751-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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