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떠날 수 있다면

  • 입력 2012-11-29  |  수정 2012-11-29 07:29  |  발행일 2012-11-29 제18면
[문화산책] 떠날 수 있다면

11월의 어느 날 아침 9시, 쌀쌀하지만 청명한 날씨에 영천천연염색사업단 ‘자우비’ 회원들이 나들이에 나섰다. 처음 떠나는 여행이어서인지 총무를 맡아 준비를 해야 했던 나를 비롯한 임원단은 무척 들떠 있었다. 다른 회원들에게서 잠이 오질 않는다는 전화가 오는 걸 보니 어딘가로 떠난다는 데 대한 설렘이 큰 모양이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부석사로 향하는 길. 사업단에서 지낸 1년을 되돌아보며 한마디씩 하는 시간이 있었다. 천연염색 외길을 걸으며 겪었던 얘기들이 화제가 됐다.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은 대부분 10여년 천연염색을 해 온 사람이니 눈빛만으로도 통했다. 서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례로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고된 작업을 하다 보니 손목과 팔목에 탈이 나기 일쑤라는 얘기에서부터 우연한 실수를 통해 새로운 색깔을 얻었을 때의 기쁨, 자연을 벗삼아 지내며 돈 버는 재주가 그리 없기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까지 끝이 없었다. 그런 공통점이 부석사 여행을 더욱 편하고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천연염색이란 같은 길을 걷는, 닮은 사람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하고 좋을 줄 몰랐다. 천연염색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만큼 고된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채도나 농도를 미세하게 바꿔 원하는 색깔을 얻어내는 섬세한 작업이다. 그래서 서로 더 많이 이해하고, 정보도 교환하자며 의기투합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닌가.

부석사 입구에서 산나물 향기가 그윽한 산채정식을 먹은 뒤 단풍이 고운 길을 따라 부석사로 향했다. 노오란 은행잎이 길가에 수북이 쌓여 있고, 붉디붉은 단풍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을 환영이라도 하듯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차갑고 청량한 공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송이가 소담스러웠다.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떨어진 가을, 예쁘고 슬프다’는 짧은 글귀와 함께.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석사 일몰광경을 보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하기야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게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 참으로 홀가분하고 좋았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떠난 이번 여행은 서로 나누고 채워주는 충전의 기회였다. 여행이 지친 우리의 마음을 쉬게 함으로써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문영숙 <햇님달님 천연염색공방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