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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되돌아보는 세모(歲暮)가 다가왔다. 올 한 해 이런저런 일도 많았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로드 킬’로 잃은 일이었다.
영천에 새 공방을 지어 이사오던 날, 마당 울타리에 걸터앉아 있던 노란색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윤기 없이 흐트러진 털, 바짝 마른 몸집. 길고양이였다. 이전에도 고양이와는 친분이 있던 터라 먹이를 주며 불렀지만,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거리를 좁혀 고양이를 쓰다듬게 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목을 쓰다듬으면 눈을 지그시 감고, 꼬리를 흔들며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럴 즈음, 고양이의 살이 오르고 털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랑은 모든 걸 변화시킨다.
어느 날, 한동안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을 즈음 고양이가 무척 야윈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유와 빵을 주자, 우유만 먹은 뒤 빵은 입에 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아마 빈집 어딘가에 새끼를 낳은 듯했다. 하루에 10번 이상 빵을 물어다 날랐다. 애틋한 어미의 마음은 동물도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2주쯤 지났을까. 작업장 한켠에 만들어준 고양이 집에서 내 주먹 크기의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발견됐다. 밤이면 마당을 활보하며 뛰어놀다가도 낮이면 잠만 자는 녀석들. 깻잎에 붙어있는 벌레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더 이상 어미는 오지 않았다. 대신 아빠인 듯한 놈이 와서 얼굴을 부비고 가곤 했다. 마당에서 함께 뛰놀며 하루가 다르게 커갈 때쯤 서열이 높은 놈에게 햇님, 낮은 놈에게는 달님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햇님은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먼저 뛰쳐나와 강아지처럼 재롱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와보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도밭으로 가는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채 발견됐다. 햇님이를 햇볕 잘 드는 곳에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 상실감과 허전함은 컸다. 그제야 내가 사랑을 준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햇님에게서 더 많은 사랑과 관심, 즐거움을 선물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말년에 명상을 통해 쓴 글에서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설파했다. 대문호의 지혜가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문영숙 <햇님달님 천연염색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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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랑하며 살자](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12/20121213.01019072242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