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무가 하는 말

  • 입력 2012-12-26  |  수정 2012-12-26 07:31  |  발행일 2012-12-26 제23면

식물에게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말해주면 그 식물은 더욱 예쁘게 꽃을 많이 피우고 싱싱하게 오래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무를 깎는 일도 식물을 정성스레 키워 꽃과 열매를 얻는 일과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쇠보다도, 돌보다도 무르다고 얕잡아보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끌과 망치로 있는 힘을 다해 용을 써봤자 모두 허사다. 센 결을 따라 쪼개지거나, 엉뚱한 곳에 금이 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각이나 건축물에 쓰이는 큰 사이즈의 재료가 되기까지 나무는 적어도 수 십 년은 기본이고 몇백 년을 자라야 한다. 사람은 고작 1백년도 못 사는데 이 세월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생각해 보면 나무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다. 나무는 그 긴 세월을 차가운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눈, 비, 바람, 번개 등 온갖 힘든 일을 겪고 살아남았으니 그 내공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살아남았음에도 가구가 되고, 종이가 되고, 땔감이 되는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낌없이 제 한몸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무에게 사람의 1백년은 부끄러워진다. 지금 내가 깎고 있는 이 나무도 어쩌면 내 나이만큼, 아니 그보다 더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형성된 성질이란 것이 내게도 있는데, 나무에게 그런 성질이 없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 나무들에 대하여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성질과 속성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내 발 밑에 나뒹구는 나무들이 온몸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살던 곳은 어땠는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굵은 가지가 많았는지, 그래서 저의 성질은 어떠한지, 땅과 뿌리를 잃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이런 나무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쇠보다도, 돌보다도 무르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의도한 대로 내가 얻고자 하는 형상만을 강요하면서 공구의 힘을 빌려 강제로 얻어낸 결과물은 언제나 나의 바람을 빗나갔었다. 그것은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었던 것이다.

힘든 생을 거친 그 나무들과의 교감은 기다림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사랑은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나무를 깎고, 나무는 나를 키운다.

김효선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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