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이 듦의 설렘

  • 입력 2012-12-27  |  수정 2012-12-27 07:32  |  발행일 2012-12-27 제23면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나이를 더 먹는 게 마냥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어느 해부터는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나이를 더하지 않고 거꾸로 한 살씩 뺀 나이를 우기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린 시절에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설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한꺼번에 두 그릇씩 먹었다. 엄마가 외출한 틈을 타 화장품을 모조리 꺼내 얼굴에 뽀얗게 분을 바르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고, 굽 높은 엄마 구두를 신고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은 꽤 오래 지속됐다. 학창시절에는 졸업을 하자마자 파마를 하러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 어른이 되기만 하면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무얼 하든 자유로웠던 학창시절의 자유에 만족하지 못한 채 어른들이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일탈의 자유’를 갈망했던 것이다. 부모님의 그늘에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천연염색의 매력에 빠져 일하다가 보니 문득 그 철없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누군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아는 지금,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아낼 텐데….

어른 흉내를 내면서도 정작 어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막연하게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쏜살처럼 흘렀다. 미국의 사회학자 칼 필레머는 “나이를 먹는 것은 인간이 겪는 가장 낯선 경험이며, 인류가 공유한 한 가지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이 듦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에겐 오늘이 가장 나이든 날이다. 낯선 경험을 할 수 있기에 설렘이 있다. 이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저무는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일에 집중하자. 아껴 두었던 말을 할 때다.

문화산책을 통해 내 삶의 소소한 얘기들을 털어놓는 것은 낯설지만, 색다른 모험이었다. 최선을 다해 즐겼다는 인사로 끝맺으려고 한다. “카르페 디엠!”

문영숙 <햇님달님 천연염색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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