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렇게 간사한 것을

  • 입력 2013-01-07  |  수정 2013-01-07 07:25  |  발행일 2013-01-07 제23면

쉬이 바쁘지 않던 나의 전화기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벨소리에, 진동에 그조차 듣지 않기 위해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더니 불빛의 색깔을 바꾸면서까지 나를 찾는다. 공연 준비를 위해 분장실 한켠에 던져놓았던 내 전화기가 무대 위에서 나름의 공연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열심히 일한 것을 자랑하며 부재중이라는 문구를 펼쳐놓는다.

학생, 프로그램을 의뢰하는 선생님, 학교나 기관에서 보고서를 재촉하는 문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던 번호와 문구가 보인다. 궁금해하던 찰나에 또다시 전화기가 자신의 일하는 모습을 보라며 소리를 낸다. 전화기가 전해 주는 이런저런 소리, 그중 내 귀에 가장 또렷하게 남는 말은 ‘글을 부탁합니다’였다. 작은 녀석이 전하는 그 소리는 무척이나 컸다.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던 나는 옆에 있던 선배님들께 여쭈었고, “해봐. 좋은 기회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가장 크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는 ‘넌 할 수 없잖아’였다.

언제나 그랬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거나 내가 나태해져 있으면 들려오는 그 말. ‘난 못해, 안돼, 실력이 모자라.’ 그럼에도 내 마음은 ‘하고 싶다’고 외친다.

그렇게 몇 시간을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가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다 일년 전 이맘때, 중학생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들었던 버킷리스트와 보물지도가 생각났다.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 버킷리스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그에 맞는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 이미지화하는 보물지도. 이 두가지 모두 나의 실력이나 주변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다’에 맞추어 적고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문득 떠올랐다. 나의 보물지도와 버킷리스트에 있던 ‘나만의 글쓰기’. 더불어 드는 생각은 ‘그래. 내가 끌어당긴 것이구나. 내가 원하던 거구나’였다. 그 순간 ‘그래 해보자. 그럼,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어. 내가 해본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냥 이렇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거지’라고 생각하고 나니 약간의 염려는 있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설렘도 생겼다.

이렇게 간사한 것을. ‘난 못한다’가 마음을 돌리니 ‘감사’가 되어버렸다. ‘난 실력이 모자라’가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어. 내가 해본다는 게 중요한 거지’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니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고맙습니다.

이미은 <연극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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