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두려움과 사랑은 함께 춤출 수 없다

  • 입력 2013-03-18  |  수정 2013-03-18 07:33  |  발행일 2013-03-18 제23면

두려움은 사랑할 수 없게 한다. 두려움은 상대의 힘에 굴종해서 부당한 일에도 참고 견디거나, 조건이 허락하면 도망치고, 힘이 생기면 상대를 공격하게 한다. 폭력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나 목말라. 물 좀 줘”라고 쓰고 열여섯 살 아이는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 새처럼 자유롭게…. 아니면 운명의 납덩이처럼…? 안타깝고, 두려움으로 가슴이 떨린다. 그것도 우리동네 옆 아파트에서. 그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아들을 키우는 어미로서 미안하고 애통한 마음이다. 아이는 폭력에 대한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폭력을 행했다. 살아있는 현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에서 자신이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을 테니까. 이 죽음 앞에서 교사, 학교, 교육청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먼저 성찰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학교폭력 근절 대책으로 교육청은 학교 주위에 경찰을 더 배치했다. 대개는 전직 경찰이 안전지킴이였다. 학교 안에서 학생 사이에 폭력이 발생하면 지금은 교사가 개입하기 전에 경찰의 손으로 넘겨진다. 아이들을 예비 범죄자로 감시하며, 겁주고 협박해서 마음속에 두려움을 만들어 말 듣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몸에 익숙한 식민지와 파시즘의 흔적이다. 현재 대부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예방교육 역시 처벌의 내용을 강조하는 ‘겁주기’식을 벗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진단은 치료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만 필요한 과정인데 전교생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하는 것은 과잉행위다. 그 예산으로 좀 더 창의적이고 즐거운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훨씬 가치있게 예산을 쓰는 것이 될 것이다. 진단만 하고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상처가 될 뿐이다.

자신들에게 먼저 폭력을 행사했던 세상에 복수하며, 더 많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방법을 바꿔야 한다.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공동체의 미덕이 무엇인지, 즐겁고 신명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래서 서로의 존재가 고맙고 정이 느껴지는, 우정과 사랑을 경험해 보게 하라. 어린 시절 어둑해질 때까지 골목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 서로를 살리며 이름을 불러주었던 그 정을 느껴보게 하라. 그렇게 서로 사귀게 하라. 폭력은 우정과 사랑으로 이길 수 있는 것. 두려움과 사랑은 함께 춤출 수 없나니.

이은주 <문학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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