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통영과 청마

  • 입력 2013-05-17  |  수정 2013-05-17 07:21  |  발행일 2013-05-17 제18면

일전에 도다리 쑥국이나 물 메기탕, 일명 ‘물 곰탕’을 맛보려 통영엘 다녀왔다. 그런데 물 메기탕은 철이 지났단다. 대신 점심은 멍게 비빔밥으로 해결하고 도다리 쑥국은 저녁에 먹고자 일단 참기로 했다. 그런데 간식으로 먹은 통영의 별미 ‘꿀빵’ 때문인지 종일 걸어다녀도 배가 꺼지지 않아 아쉽게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먹는 데 집착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겠지만 사실 주목적은 청마 유치환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유치환의 문학적 업적이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20여년을 한 여성을 향해서 변함없이 구구절절한 사랑의 언어 -그렇다. 언어였을 뿐이다 -를 쏟아 낼 수 있었다는 것에 그는 나의 우상인 것이다.

사랑의 표현에 서툴렀던 젊은 날의 우리에게 청마의 시어는 아무런 여과 없이 그냥 그대로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청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0여년간 시조시인인 정운 이영도에게 부친 편지글 중 일부가 정운에 의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이름의 서한집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당시 많은 청춘들의 영혼을 살찌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때는 통영 국제음악제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음악제가 열릴 통영시민문화회관이 있는 남망산을 거쳐 동피랑마을, 그리고 청마거리와 그가 이영도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매일같이 부치던 우체국도 찾아보았다.

그런데 몇 시간째 다녀도 그의 생가 터를 찾을 길이 없었다. 답답한 김에 지인에게 메신저로 하소연했다가 핀잔만 듣곤…. 결국 생가를 복원해 놓은 청마문학관에 가서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생가 터는 도로로 변해 있었고, 생가 터를 나타내는 조그만 안내판은 불법주차한 차에 가려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종일 걸어다니며 그의 글과 그의 마음을 생각해보고 느꼈다. 이제 받기보다 세상을 향해 베풀어야 할 나이가 된 지금, 나는 메마르지 않은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굳어지는 머리와 딱딱해지는 내 가슴에는 여전히 그의 아름다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가 남긴 시어로 인해서 나의 남은 인생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아름답고 싶다.

김형국 <아양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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