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연

  • 입력 2013-05-22  |  수정 2013-05-22 07:25  |  발행일 2013-05-22 제21면
[문화산책] 인연

제목은 기억에서 아련한데 몇 년전 수필의 삽화를 그린 적이 있다. 한정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 탈피를 꿈꾸는 내용을 소라게에 비유해 풀어간 글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소라와 게의 관계, 인연을 골똘히 생각했다.

속담에 ‘길에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 해서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인연이 있어야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생명을 다한 소라와 게가 숙명처럼 만나서 함께 하는 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불교에서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특별한 관계가 있어야만 옷깃도 스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소라는 생명을 다하면서까지 게와 인연을 맺는다. 짊어지고 다니는 소라가 없는 게는 가히 행복할 수 없고 짐을 벗어 던지고 넓은 바다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는 게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도 살면서 짐의 무게는 다르지만 짐 없는 삶을 꿈꿀 수 없다.

인도여행에서 깨달음을 통해 다음 생애를 준비하며 고행을 통해 고통을 감수하는 인도인들을 봤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와의 인연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인연을 준비하는 그들을 볼 때 숙연하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그것이 곧 행복이었다. 소라게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라면 일생을 다하기 위해서 늘 소라라는 짐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도 자기 삶과의 인연인 것이다.

작년 일이다. 소라를 좋아하기에 한 바가지 사가지고 와서 냄비에 푹 삶았는데 작은 소라에서 삐죽이 나와있는 게 발을 보는 순간 안타까웠다. 좁은 공간에서 소라와의 인연을 저버리지 않고 생명을 다한 소라게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소라게의 운명이다. 그것을 보고 슬픈 생각을 한 나와는 악연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인연이라 생각하면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소라게를 옮긴 자리에는 흘러나온 물이 소라와 게의 인연을 확인이라도 하듯 선명한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멍하니 또다른 생각에 젖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끄는 삶을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이치에 따라 순리에 순응하면서 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에 되어가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나와의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만남 또한 갖가지 모양의 인연으로 생각하고 예사로 스치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자 레우키포스는 “어떤 과정도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 모든 생성은 원인을 가지며, 그러기 때문에 필연”이라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안창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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