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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여왕은 보통여자들과 다른 삶을 누렸다. 그들은 비범한 담력과 탁월한 지혜, 불굴의 의지와 요상한 처세술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고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물론 상상을 불허하는 러브스토리도 남겼다. 역사책에서 쏙 빠진 그 로맨스가 후세인들에겐 더욱 호기심을 자아낸다.
고대 로마를 힘센 제국으로 만든 줄리어스 시저와 그의 후계자 안토니우스를 치마폭 안으로 끌어들인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BC 69∼30)는 사랑과 영예의 불빛이 꺼지자 39세의 나이로 코브라의 독이빨에 목숨을 맡겼다. 절세미녀는 ‘유혹의 신화’를 ‘매혹의 죽음’으로 깔끔하게 단장하고 싶었을까?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624∼705)는 거리의 약장수, 왕실 의사, 20대 미소년 형제들과 잇따라 로맨스를 펼치며 “천자(天子)에게 에로스의 벽은 있을 수 없다”고 호령했으며 임종 때는 “아무것도 쓰지 말라!”는 괴상한 유언을 남겼다. 오만했던 여왕은 사랑도 나 혼자만의 관 속으로 몽땅 가져가버렸다.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1626∼1689)는 고작 6세에 예쁜 모자 대신 딱딱한 다이아몬드 왕관을 썼다. 하지만 왕실 장식이 거추장스러웠던지 26세에 왕관을 사촌오빠에게 넘겨준 후 백마를 타고 유럽대륙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자유만세! 마지막 도착지 바티칸에서 죽음을 맞았을 때 63세 처녀의 양 손에는 신방을 차릴 수 없었던 남자 아조리노 추기경의 애틋한 연서들만 꼭 쥐어져 있었다. 도도했던 여왕은 사랑이 전부였을까?
사랑에 눈이 멀어 왕국을 잃고, 아들도 빼앗기고, 마지막엔 단두대의 도끼 아래 눈부신 목덜미까지 내놓았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1587)는 지금도 전기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역사학자들을 바쁘게 한다. 순교자로, 살인자로, 협잡꾼으로, 혹은 거룩한 여인으로! 그러나 참혹한 순간을 맞았던 여왕의 로맨스는 혼돈의 어둠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신라의 선덕여왕(재위 632∼647)과 진덕여왕(재위 647∼654), 진성여왕(재위 887∼897)에 이어 1천126년 만에 조선의 여왕이 재탄생했다. 궁궐 체류기간이 5년으로 딱 한정되어 좀 아쉽지만, 퇴임 후 어떤 영혼의 일기장을 들고 저잣거리로 나설지 궁금하다. 온 백성과의 로맨스는 달곰쌉쌀했을까? 혼란스러운 쓴맛이었을까? 아니면 무미건조했을까?
전종건 <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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