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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97번 도로를 타고 남조로교차로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잠시 후에 추억의 테마공원이라는 ‘선녀와 나무꾼’을 만날 수 있다. 공원 이름을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에서 따왔을까, 혹시 동화를 재연하는 아동물 전용극장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으로 들어서니 그게 아니었다. 그다지 넓고 크지 않은 그런 딱 어울리는 곳에, 이리저리 미로 같은 투박한 공간에,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한껏 펼쳐놓았는데 이를 와서 보고 느껴보란 듯이 말하고 있다.
가설극장 같은 공간에, 각종 시대상에 어울리는 마네킹이 연출하는 장면은 어떤 곳은 웃음과, 또 어떤 장면은 가슴 뭉클한 그런 여러 가지 우리 소시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마네킹에 의해서 재현되고 있는 상황이 그 시대상을 완성도 높게 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선녀와 나무꾼은 감동과 공감을 일으킨다. 조금 투박한 맛이 없지 않지만, 그러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바로 우리가 걸어온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특히 흑백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상영하는 창고같은 극장, 그 시대 장터와 도심의 상가거리, 자수박물관의 다양한 볼거리, 코흘리개 아이들의 놀이장면, 종이인형을 통해 보여주는 우리의 옛 풍속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게 하는 교복과 교련복 시대의 아련한 추억들, 그러다가 한 장면에 발길이 오래 멈추었다. 난로 위에 도시락이 탑처럼 쌓여있는 60년대 겨울의 교실 풍경이었다.
아직 보릿고개에서 허우적거리던 당시, 어머니는 보리밥을 양껏 꾹꾹 눌러 담고는 그 위에 흰 쌀밥을 종이처럼 얇게 깐 것으로 도시락을 채웠다. 그러나 점심 시간, 그 검은 보리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뚜껑으로 앞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젓가락질을 하곤 했다. 반찬은 멸치볶음 같은 것이 최상이었고, 늘 콩자반이나 흘러나와 책이나 가방을 물들이는 고추장 등이었다. 어쩌다 계란 후라이 하나 덮이는 날은 쉬 먹지 않고 앞뒤로 마치 자랑하듯 으스대곤 했다. 보란듯이.
그 시대 어머니들은 자식의 바지도, 양말도, 내의도 기워 입혔다. 호롱불 아래에서 바늘에 실을 꿰어 깁고 기웠다. 어쩌다 쌀 한 톨 하수구에 버리면 호령이었다. 버리는 물건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도 뷔페 식당 같은 곳에서 먹다 남은 음식이 손 한번 대지 않은 음식이 산더미처럼 버려지고 버려진다.
이수남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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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선녀와 나무꾼](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5/20130529.01023071852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