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시인의 목소리

  • 입력 2013-06-04  |  수정 2013-06-04 07:31  |  발행일 2013-06-04 제22면
[문화산책] 시인의 목소리


요즘 저는 ‘시인의 목소리’에 푹 젖어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 아침, 수성아트피아 무학홀에 떠다니는 외롭고 경탄스러운 그 소리에는 인생의 에스프리와 사투리가 배어있습니다. 성우들은 육체가 황혼으로 넘어가는 노(老)시인이지만 영혼만은 여명처럼 맑고 서늘하게 피어오릅니다. 군더더기 없는 지혜가 사랑보다 중요하고, 황홀한 로맨스가 멀건 행복보다 값어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서!

지난 세월 동안 제가 읽은 수많은 소설의 주제는 주인공들의 고뇌와 열정, 파국 등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빈곤함이겠지요. 하여, 저는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인들은 “모름지기 시란 매력적인 열정과 향기로운 즐거움”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소설의 어둠 대신 말입니다. 또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들이 책갈피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들판으로부터, 강으로부터, 밤으로부터, 새벽으로부터 신비롭게 걸어 나왔다는 문학적 사실도 가르쳐주었습니다. 빛이라는 단어가 번쩍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밤은 캄캄했던 시간이 분명 스며있지요.

이전에 저는 시론(詩論)들을 읽을 때마다 별들이라고는 전혀 본 적이 없는 천문학자의 책들을 읽고 있다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의 목소리는 이론이란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다는 것, 시인의 수만큼이나 많은 시론이 있다는 요긴한 진실을 깨우쳐주었습니다. 마치 시집 속의 언어조차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접할 계기라고 속삭였습니다. 시란 교묘하게 짜여진 단어들로 미(美)를 표현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대부분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는 한 문장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끔 들춰보는 그리스도교의 ‘성서’나 이슬람의 ‘코란’은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神)의 속성을 풀이해 놓은 문자라는 불경한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거창한 스토리텔링도 제자들이 남긴 글이지요.

마지막으로 시인의 목소리는 언젠가 저에게도 시가 불쑥 튀어나올 수 있겠다는 가당찮은 꿈을 꾸게 했습니다. 금요일에 들려오는 그 매혹의 소리에 넙죽 큰 절을 올립니다.

전종건<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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