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동행

  • 입력 2013-06-10  |  수정 2013-06-10 07:29  |  발행일 2013-06-10 제23면

학창시절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산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은 스산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한적한 길이었다. 길은 안 보이고 하늘길만 따라가야 할 칠흑 같은 밤이면 머리카락이 이내 곤두세워질 정도로 무서운 길이었다. 하지만 이를 견딜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콧노래와 하나님과의 동행이었던 것 같다. 강한 척하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이 함께하는 이가 없다면 어떨까?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과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 모양은 사뭇 다르다. 잘못된 동행으로 평생 아픔을 겪는가 하면, 아름다운 동행으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평행선 같은 동행으로 다가서고 싶지만 다가설 수 없고 다가서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서양미술 역사상 위대한 인상파 화가로 고흐가 있다. 그림을 통해 하나님께 봉사하는 화가가 되기를 바랐던 그에게는 후견인이자 동반자이며 형의 예술을 동경한 동생 테오가 있었다. 화랑의 딜러로 일하며 번 적은 돈으로 형의 생활비를 대고 그림을 계속하도록 도와줬다. 또 죽기 전까지 19년간 구구절절한 편지 700여통을 주고받았다.

“테오에게.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이 글은 형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고흐는 평생 단 한 폭의 그림 ‘붉은 포도밭’만이 제대로 된 전시를 통해서 팔렸을 정도로 가난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그림과 동생이 동행했다. 지금 그가 이처럼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이 동행했기에 가능했다. 세상을 떠나 함께 나란히 묻혀 죽어서까지 동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행복한 동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흐뭇해진다.

다양한 모양을 가진 사물처럼 각기 다른 사랑하는 연분(緣分)을 만나 희로애락을 함께하면서 좋아하는 자기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누구든 혼자서는 될 수 없고 남의 협조 없이는 뜻을 이룰 수 없다. 독불장군은 없고 그렇게 되어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안창표 <화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