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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먼 길을 오시느라 힘들었지요?”
벽안의 노(老)성직자는 현관 앞에 나와 웃음 띤 얼굴로 방문객을 맞았다. 응접실은 보통 살림집의 거실처럼 소박하고 깔끔했다. 그의 얼굴은 20여년 전 천주교 안동교구 주교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맑고 밝았으나 세월의 흔적이 남긴 주름살이 가늘게 패어 있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실려온 유머가 단번에 긴 공백을 메워주었고, 서먹함을 걷어냈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같이 식사합시다!”
옆방에 차려진 식탁 위에는 손수 재배한 상추와 풋고추, 마늘, 오이 등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곰국과 구운 고등어, 캔 맥주만 빼면 시골밥상과 다를 바 없었다. 맥주를 따르는 그의 손등은 농부의 투박함이 묻어 있었다.
“이렇게 아늑하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난생 처음입니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두봉(Rene Dupont) 주교는 24세 때 신품성사를 받고, 이듬해인 54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건너왔다. 이후 그의 삶도 대부분 안동 근교의 농촌에서 보냈다. 지금은 몇 년 전 교구 재단에서 마련해준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 한 귀퉁이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독서하고, 강의 준비하고, 멀리서 날아온 편지에 답변을 쓰며 오전 시간을 보냅니다. 오후에는 텃밭을 가꾸고, 저녁에는 TV 뉴스를 시청한 후 밤 기도로 하루 일과를 마치지요. 그리고 한 달에 절반은 청탁 강의나 피정 지도하러 다른 도시로 떠난답니다.”
100평 남짓한 앞마당에는 고추, 마늘, 토마토, 양파, 가지, 상추 등 온갖 채소가 6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텃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두봉 주교는 마늘종을 한 손 가득 꺾어 우리 일행에게 선물로 주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성직자의 손동작은 섬세하고 정확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덕담을 건네자 “그동안 하느님 덕분에 행복하게 살았으니 이젠 그분이 부르면 흔쾌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행복 화두가 만발하고 있어요. 하지만 행복을 돈과 연결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돈은 집착만 부를 뿐인데….”
현관 앞에서 다시 방문객을 떠나보내는 은퇴 주교의 두 손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종건 <수성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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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주교님의 텃밭](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6/20130611.0102207314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