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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연 숙제로 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 손수 그린 그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만큼 잘 그리셨던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은 고등학교에서 미술부 활동을 했던 큰 형님이 친구들과 텐트를 가지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는 모습을 턱을 괴고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었는데 마치 흩어져있던 사물이 하나하나 모여서 하나의 완전한 제품이 되는 것 같은 그림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한 느낌을 받았고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께서도 한문을 잘 쓰셨으니 이것을 보면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하다.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네가 커서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그림을 그리는 데 나에게는 계기가 된 듯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피란을 오셔서 고령이 고향인 어머니를 만나 황해도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룬 전주 근교 완주에서 과수원을 하면서 그리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8남매를 키우셨다. 당시 아버지 말씀이 “뺑끼쟁이 해서 뭐하려고!” 하시면서 그렇게도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셨다. 대학 다닐 때였다. 아버지께서 약주를 한 잔 하시고 “이따위 그림이 뭐하는 거야” 하시면서 캔버스를 내동댕이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1993년 대구고금미술연구회 선정작가가 되었고, 존경하는 정점식 선생님께서 나에 대한 글을 이렇게 쓰셨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그의 화실을 방문했지만 이곳은 마치 고물상의 창고와 같은 인상이었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이 작업실에는 크고 작은 캔버스를 비롯해서 물감이나 도기구(道器具)들이 흩어져 있고 드로잉이나 에스키스 또는 그 소재로 수집해둔 잡다한 오브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이 난잡한 작업장을 보면서 기거하는 거처와 근무하는 학교를 왕래하면서 그의 생활을 제작 속으로 집약하려는 의지와 그 몸부림을 읽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의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때 생활이 지금은 추억으로 자리 잡은 부분도 많지만 이처럼 우여곡절의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뤄졌다고 생각해 보면 나름 열심히 그림을 그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안창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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