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새벽 웃음소리

  • 입력 2013-07-12  |  수정 2013-07-12 07:34  |  발행일 2013-07-12 제18면
[문화산책] 새벽 웃음소리

여명을 기다리던 살구나무가 사람 발자국 소리 반가운가 보다. 노랗게 익은 열매 툭! 떨어뜨린다. 아직 새벽 다섯 시도 되지 않았는데 벚나무에 앉았던 새들이 서로 깨우느라 자지러진다. 먼저 손 내미는 버찌와 살구로 입가심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범어산을 향하는 부지런한 부부의 두런두런 얘기 소리 정겹다.

언니의 전화 성화에 마지못해 구민운동장에 나오긴 했지만 ‘난 아직 이 운동을 할 나이가 아닌데’ ‘난 골프를 치는데, 쪽팔리는데’ 불쑥 일어서는 자존심을 누르며 게이트볼 룰에 대해 시큰둥하게 듣는다. “야야, 이것도 다 늙어 늦게 하면 괄시받는다. 미리 배워야 선수도 되고 대접받지. 정신 깨워 1게이트부터 통과해 봐라!” 차츰 동료 선수들이 나오니 초보는 얼른 버려두고 하하 호호 유쾌하게 게임을 즐긴다. 혼자 심심하던 차 약간 등 굽은 할머니 한 분이 함께 놀자며 “세 개의 게이트를 통과하려면 열 개의 공을 번호 순서대로 쳐야 하고, 남의 공에 잡아 먹히지 않을 위치에 내 공을 놓아야 하고, 또 남의 공을 잡아 먹을 연구를 해야지” 하신다. 아구! 아침부터 이 잔소리를 다 들어야 하나? 몇 번 공이 몇 게이트 통과했는지 다 기억하는 대단한 어른이시다.

노인들 게임이니 아주 쉬운 줄 알았더니 차라리 골프는 단순한 운동. 게이트볼은 거의 매일 만나 수다도 떨고 머리를 굴려야 하니 외로움은커녕 치매 걱정 없겠고, 햇살과 같이 연습할 수도 있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엔 운동기구에 앉아 요즘 세상을 듣는다. “자식은 결혼해서 내보내면 남이야, 요즘 요양원에 보낼까봐 아프다 소리도 못해! 아주 비싼 요양원에 가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지.” 아직 예쁜 할머닌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참 씁쓸하다. 하모니카로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을 불며 돌아오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작은 리어카를 끌며 자신의 포장마차로 다가간다.

“아들과 손자들 그 목소리와 눈빛이/ 빛나는 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지만/ 그들은 끝내 별빛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필자의 졸시 ‘요양원에서(유배시편)’의 한 부분처럼 하루가 십년 같은 병상, 서로 침묵으로 눈길을 피하며 레테강 너머 세상을 애절히 기다리기 전 새벽부터 친구들끼리 농담도 곁들여가며 딱! 치는 소리로 아침 해 밝히는 이들이 현명해 보인다. 곧 다가올 네 미래라며 초침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야꼬! 저 퍼런 오동낭게 잎사구 벌씨로 노오라이/ 뚝! 뚝! 눈물 흘리고 있네”(필자의 시 ‘천지삐까리 아입니꺼’ 중에서)

정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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