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모무를 그리면서

  • 입력 2013-07-26  |  수정 2013-07-26 07:36  |  발행일 2013-07-26 제18면
[문화산책] 모무를 그리면서

중부지방은 물 폭탄을 맞고 있다는 뉴스, 외딴 과수원에서 소나기 오는 밤이면 어른 등에 업혀 마을로 피난 가던 시절 떠올리는데 초사흘달이 물끄러미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대사가 피리를 하도 잘 불어서 달이 가던 길을 멈추었다는데 어디서 누가 피리를 불고 있는가? 창 바깥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직 매미가 울고 있다. 소나기 한 줄기 내려 달라고 빈다면 죄짓는 일일까?

산사태가 폭삭 내려앉힌 집터에서 주인은 어이없어 웃고 있다. 갑자기 무인고도에 유배당했을 때보다 더 참담한 심정이리라. 초등학교 시절 사라호 태풍이 작은아버지를 오목천 냇물로 휩쓸고 가는 모습 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그 냇물에서 혼을 건지느라 밤새 둥둥 굿 하는 소리 평생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두려움과 신비감 때문에 지금 무작정 승무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승무는 스님들의 수행 과정이자 불법 전하는 포교의 도구, 또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추는 천무, 무당춤이란 뜻도 되겠지만 필자에겐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춤사위로 보인다. 몸의 떨림이 현란할수록 그 염원은 더욱 간절해 보이기 때문에 신들린 듯 그 역동이 현대시의 능동적인 묘사와 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 모무(母舞)라 불러본다.

사물의 근본을 바라보는 시의 직관력을 기르기 위해 관찰력이 기본인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동안 사물의 겉껍질도 바로 보지 못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벚꽃잎이 흰색이 아니라 옅은 살분홍빛이라는 것도.

새삼스레 다시 벚꽃을 바라보면서 ‘예쁘다!’ ‘꽃이 하얗게 팝콘처럼 피어나네!’ 하던 상투적인 표현이 ‘저 꽃송이가 뿌리의 땀방울이네’ ‘꽃이 하느님의 똥’이라고 볼 수 있다면 사물의 근본을 찾기 위해 상상력의 삽질을 얼마나 깊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피카소가 있고, 일반인들이 어렵다고 보는 현대 시인들의 낯선 시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아침 7시, 시원한 바람을 가둔다며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닫다가 ‘그는 아침마다 바람을 가둔다. 아내의 체온이 더 이상 더워지지 않도록 문틈까지 꼭꼭 눌러 점검한다’라고 쓰다 보니 ‘어라! 이거 재미있는 시 한 편 되겠네’ 당장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한한,/ 참 희한한 제비라 카이예/ ‘아, 여자가 화투판이나 제비 찾아다닌다고 이따구 시 쓰니 문을 단디 처닫을 수밖에’/ 부부란 이 맛으로 사는 걸까?

정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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