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약 100년 밖에 안돼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서양음악의 선구자였던 홍난파의 토양을 맥으로, 오늘날 장르마다 한국의 많은 음악인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짧은 역사에 비해 그 성과는 참으로 풍성한 열매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은 광복을 걸쳐 6·25전쟁으로 소용돌이치던 역사와 함께 힘들지만 빛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6·25전쟁 당시 대구는 수많은 예술인이 고뇌하던 문화예술의 산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이런 지역의 여러 문화공간 중 70여 해를 존속해온 녹향음악감상실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문명의 혜택으로 각양각색의 음악이 우리의 청각을 자극해 온다. 삶의 고통을 인간적 정신세계로 승화시킨 불후의 명곡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선율로 샘솟듯 넘쳐흐르는 서정적 음악은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주기도 한다.
어느 여름날 레코딩 관계로 녹향에 들렀는데 창립자 고(故) 이창수옹께서 시원한 차 한잔을 건네주면서 하는 말씀이 “여기 축음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레코드는 전부터, 돈만 생기면 기차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수집해 왔다. 이 가치를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큰 건물에 비유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보고 듣고 느끼며 감동하고, 아름다움을 지향하려는 그 분의 순수한 정신은 마치 그림을 보면 음악이 흐르고, 그 속에 시가 영상화하듯이 참으로 조화로운 삶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헤세는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은 녹향을 ‘음악의 숲’이라는 시제로 이렇게 말한다. “해와 달이 하늘을 빛내고 있는 날은/ 음악은 언제나 강물처럼 흐르고/ 일흔 해의 소리가 노을에 물드는/ 녹향의 실내악 속으로/ 악선의 정열도 흐릅니다/ 장중한 실내악 속에/ 우뚝 선 악선이시여/ 그대의 고결한 생애는 환희의 교향곡이요/ 영혼의 양식을 길러낸/ 성스런 선율이 춤추는 무성한 숲입니다/ 고결한 음악의 숲을 거닌/ 이중섭, 유치환, 김동진…/ 거목의 인걸은 가고 없으나/ 악선의 녹향은 아직도 여기 남아/ 일흔 해의 전설이/ 세레나데가 되어 물결칩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녹향이 좋다.
최옥영 <화가·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