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숙 <시인> |
새벽 5시, 열이레 달이 범어산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년 동안 이 시간이면 에어로빅 준비하러 올라온다는 아주머니가 틀어놓은 ‘사랑의 조건’을 듣고 있었는가. 같이 허우적대며 춤을 추었는데 달은 어느새 숨어 버렸다. 하늘의 입인 숲은 짙은 녹색 잎 사이 노란 단풍으로 칠월 막바지 시간을 말해준다.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 마음을 다잡게 하는 숲은 폭염을 예고하며 해를 서서히 밀어 올린다. 문득 빙상장 냉기가 그리워진다.
여러 종류의 운동을 해봤지만 뿌연 안개 속에서 두 팔로 날갯짓하며 네 박자로 쭈욱 쭉 미끄러지면 백조가 부럽지 않았다. 손끝 발끝 긴장시켜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칼날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전화 한 번 걸기도 힘들던 약한 마음이 쾅쾅 세상을 마음껏 밟는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를 얻는다. 무슨 스포츠건 화병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산길에서 마주치면 모두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하는데 왜 세상사람 사이 얼음벽은 녹여버리지 못할까?
남극의 빙산이 다 녹아내리면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그 얼음이 있어 사람도 지구도 긴장시키나 보다. 그래도 처용아내는 그 벽을 없애려고 월궁 카바레에 처용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요술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 디더./ 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남편이 아내를 찾아 회관으로 모텔로 헤매야 한다니!
칠월 입김이 너무 뜨거워서 또 헛소리, 고개 드는데 황금 네거리 지상철 철로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하늘 허리를 뚫는 일은 쉬울까? 오늘도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하루의 청석산을 뚫고 있을 지하철 같은 가장들을 생각한다. 날마다 헛바람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다고 허술한 세상 벽을 관통할 수 있으려는지, 무작정 헉헉 달려야 하는 직장인들의 비애.
어른들도 열심히 살았기에 연금 등 혜택을 받고 있지만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렇다고 고령화를 탓할 수는 없고, 저출산을 탓하려 해도 아예 독신을 주장하는 젊음이 많으니 후대의 노후가 걱정이다. 올해 백수인 친정어머니, 시골에서 혼자 살며 경로당도 나가신다. 많이 움직여야 자식을 괴롭히지 않는다며 손수 담근 된장을 담아 주던 마당엔 사랑초 꽃이 환했는데 지금쯤 모닝커피를 들고 계실까? 젊을 때 과수원을 많이 걸었던 탓인지 지금도 매일 스트레칭을 하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얼음벽을 칼날로 밟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8/20130802.01018074549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