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행복 한 조각

  • 입력 2013-08-07  |  수정 2013-08-07 07:32  |  발행일 2013-08-07 제22면

요즘은 나이듦에 감사한다.

어릴 때는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여전히 욕심부리고 남의 좋은 일에 마냥 박수만 쳐주지는 않는데, 요즘 작은 일에 감사하고 느긋해짐에 감사한다. 또 ‘나 좀 자랐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해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TV 삼매경에 빠져 본방, 재방을 사수하며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식구들의 잔소리 참아 가며 뒹구는 내가 그리 행복할 수 없다. 물론, 내일 아무 일도 없이 누워있을 땐 약간(?) 불안하겠지만 소파 위의 아줌마 행복을 놓칠 순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건강 생각하며 이것저것 갈아 마시고, 영양제 챙겨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의 기분을 행복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바쁜 어제를 보내고 난 다음 날의 향기로운 아침이 주는 행복은 두말할 나위 없이 커피 속 설탕보다 달콤하다.

그 다음엔 내가 할 일들, 노래도 좋고 수업 준비도 좋고 뭔가 공부하며 보낼 수 있는 내 시간, 보람되고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한 날 발견하며 또 행복.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묻는 것도 행복한 엄마의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거나 예쁜 물건이라도 하나 살 땐 왜 그리 웃음이 나는지.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나라 임금님이 오른발로 침대에서 내려서는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왼발로 내려서면 그날은 신하들이고 백성들이고 괴팍한 임금님 성화에 고생을 하는 날이었단다. 그래서 신하들은 임금님이 오른발로 내려설 수 있게 침대 왼편을 벽쪽에 붙여놓고자 갖은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읽고 가끔 나도 침대에서 내려설 때 오른발을 의식하며 내디디곤 한다. 신자이면서 너무 미신적인 행동을 하는 날 보면 웃기지만,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자 하는 나의 귀여운 노력은 아마 계속될 것 같다.

날씨 덥다고 맛나고 시원한 저녁거리 공수해주시는 엄마. 뭐 필요한 거 없냐며 일일이 챙겨주시는 이모. 더운데 외식하자며 부엌에서 날 끌어내주는 남편.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예쁜 내 딸. 아! 행복하다.
이수경 <소프라노·대구가톨릭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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