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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 <성악가> |
몇 해 전, 사진작가이면서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출사한 사진 액자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바닷속에서 해수면 위를 향해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군무를 이루는 장면을 찍은 것인데 내 눈에는 마치 이분음표를 거꾸로 한 모양처럼 보였다. 내가 음악을 하기 때문에 일부러 나에게 이 그림을 선물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감격했지만 그분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선물한 것이었다. 작품에 이런 해석이면 어떻고 저런 해석이면 어떠하랴. 의사인 친구로부터 들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산부인과 의사는 손의 위치를 보니 ‘그녀는 임신 중이다’ 하고, 치과의사는 입의 모양을 보고 ‘치아가 고르지 못할 것이다’ 하고, 성형외과 의사는 눈썹이 없는 것을 지적하고 ‘눈썹문신을 하면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 계산한다는 것이다. 나의 관심은 다빈치가 리자 부인을 그리는 동안 연주자들을 불러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였다는데 어떤 음악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렇듯 같은 사물을 놓고도 직업, 나이, 성별에 따라 보는 관점은 물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최근 들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정부가 나서 범국가적으로 문화융성을 외치는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우리에겐 문화가 없었단 말인가? 문화는 한 국가와 민족의 삶 그 자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가 곧 우리의 문화이다. 그 찬란한 역사 속에 잠시 스쳐간 부끄러운 기억들 또한 우리가 품고 가야만 할 우리의 모습이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정권이 위태로울 때마다 과거와의 선 긋기에 나섰다. 토막 난 역사와 함께한 토막 난 문화는 그때마다 한(恨)으로 승화되어 우리의 또 다른 문화가 되었다.
이제, 나만의 느낌표를 그리자. 미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할 때 어느 누가 제시한 정답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느끼는 답을 과감하게 찾고 소통하자. 그래서 우리의 삶이 현실의 팔레트 위에 녹아 내려 움직이는 미술작품이 되고, 나의 인생을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생동하는 문화를 남겨주는 문화국민이 되자. 문화 융성의 시대, 과거의 느낌표가 아닌 현재의 느낌표가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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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느낌표](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8/20130808.0101807251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