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창문세(Window Tax)

  • 입력 2013-08-13  |  수정 2013-08-13 07:29  |  발행일 2013-08-13 제22면
[문화산책] 창문세(Window Tax)

장갑세, 모자세, 수염세 등 황당한 세금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지는 세금은 창문세이다.

1696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아일랜드 구교도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창문의 개수에 따라 부과하는 창문세를 도입했다. 그 전에 존재했던 벽난로세로 세금징수를 위해 집안에 들어가 조사하는 일이 불가피했고, 그것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심해지자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창문세를 만들었던 것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사람들이 이제는 창문을 없애기 시작했고, 신축 건물에는 아예 창문을 달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창문세가 생기기 전에는 화려한 외형과 밝은 실내를 갖춘 로코코 건물이 유행했지만 이후 창문이 없는 기형적인 건물들이 탄생하게 됐다. 집에 붙어있는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이 결정되었는데, 초기에는 6개가 넘는 창문을 가진 집만 과세대상이 되었으며 7~9개의 창문이 달린 집은 2실링, 10~19개의 창문이 달린 집은 4실링의 세금을 내야 했다. 근대 유럽에서 부동산 크기와 세금을 연계한 첫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1851년 주택세가 도입될 때까지 존속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배경에 창문세가 존재한다. 루이 16세는 가뭄과 잦은 전쟁 등으로 국가재정이 어려웠음에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미국식민지인들에게 도움을 줬고, 그에 따라 프랑스의 재정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재정난 해결을 위해 창문세 등을 도입했지만 그로 인한 과중한 세금은 급기야 시민계급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프랑스혁명의 단초가 됐다. 프랑스는 창문의 개수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한 영국과는 달리 창문의 폭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했다. 실내온기가 창을 통해 빠져나가므로 비싼 땔감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자만 창을 넓게 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인데, 이후 절세를 위해 창문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창이 유행했다. 낭만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폭 좁은 ‘프랑스식 창문’의 탄생 배경이 창문세인 것이다. 좁은 창문이 세균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1926년 창문세는 사라졌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세금을 더 거두려고 억지로 만든 세목’을 빗대어 창문세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창문세로 짓게 된 기형적 건축물이 현재 영국과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남아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김완수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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