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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 <성악가> |
모차르트는 ‘독일어는 오페라를 노래하기에는 부적합한 언어’라 생각하고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와 ‘마술피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작곡했다. 그에 반해 바그너는 ‘독일인의 성대 구조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인 말고는 다른 어떤 언어도 모음을 사용해 그토록 감각적인 표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스스로 독일어로 대본을 쓰고 독일적 오페라 확립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오늘날의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악극(樂劇)을 만들어냈다. 특히 대사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 연설하듯 전달하라는 것이 중요한 요구였다. 한마디로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을 포기하는 선언이었다.
우리는 1950년에 최초로 현제명 선생이 ‘춘향전’을 발표하고부터 무수히 많은 한국창작(개인적으로 창작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오페라가 양산되고 외국의 작곡가들에게 위촉하기도 하고 해외에서 공연도 됐지만 아직도 세계가 공감하는 대한민국의 오페라는 없다. 오죽하면 현제명의 춘향전만 한 것이 아직 없다고 할까. 그래도 한국적 오페라를 시도해 보려는 노력은 곳곳에 있었다. 1972년 윤이상이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 개막작으로 ‘심청’을 올려 호평받았다. 이념적 이유로 1999년에야 국내에 소개돼 대중화되지 못했고, 작곡가 김동진이 ‘신 창악 연구회’를 만들어 우리의 전통 창의 선율이나 리듬을 오페라에 도입해 보려고 시도한 78년의 ‘심청전’ 그리고 93년 ‘춘향전’을 올렸지만 역시 ‘시김새’ 등의 표현이 성악가들의 발성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또한 국립 오페라단도 한동안 외국 오페라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공연했지만 언어적 표현의 한계에 부딪혀 90년대 들어와서 자막으로 대체하고 원어공연에 주력하게 된다.
한국가곡은 노래하기 어렵다, 모음이 많아서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성악가들이 있다. 도밍고가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을 들어보라. 누가 감히 그에게 한국가곡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 노래를 한국어 하듯 하면 안 되듯, 한국가곡을 이탈리아 오페라 하듯 하면 되겠는가. 200년 전에 태어난 바그너가 독일어 때문에 고민했던 이것을 우리의 작곡가들이 연구해 본다면 분명 우리 언어로 된 우리의 오페라를 세계적 가수들이 부르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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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세계인이 부를 우리 오페라](https://www.yeongnam.com/mnt/file/201308/20130829.01019072229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