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걸리버, 후이늠국을 여행하다

  • 입력 2013-09-25  |  수정 2013-09-25 07:28  |  발행일 2013-09-25 제21면
[문화산책] 걸리버, 후이늠국을 여행하다

누구나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한 번쯤을 읽어봤을 것이다. 주로 어릴 적 이 책을 접하게 되지만, 이 책을 몇 번 거듭해 읽으면 그 이야기의 깊이에 어른도 감동하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 속에는 단순한 스토리상의 재미는 물론 현재 우리 인간사를 풍자하는 것을 넘어서 욕심, 욕망에 가득한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걸리버의 처음 항해는 주로 경제적 동기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되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경제적 동기는 약해진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춰볼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그곳에서 적응을 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려는 걸리버는 말(馬)들의 나라 후이늠국에서 3년을 살게 된다.

후이늠은 어원상 ‘자연의 완벽함’을 의미하며, 이상적인 곳으로서 자연의 완벽한 구현체라고 볼 수 있다. 후이늠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덕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이 후이늠국에는 우정과 사랑이 가득하다. 걸리버가 후이늠 사람에게 “당신은 거짓, 사기, 욕망, 전쟁이라는 말을 모르겠지만 인간의 세계에는 거짓과 허영, 전쟁, 욕망, 과잉, 병이라는 말이 없으면 이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후이늠의 공동체가 악한 것에 대한 생각과 관념이 없는 사랑과 우정의 나라라면 인간의 공동체는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며 속물이 되어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몸을 위해 투자하는 세계이다.

또한 걸리버가 ‘병’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데, 왜냐하면 자연과 질서로 이루어진 후이늠의 세계에서 ‘악’은 존재할 수 없으며, ‘진실이 아닌 것’ 외에는 거짓이나 잘못을 표현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한 것을 칭찬하고 북돋워주기보다 늘 질시의 대상으로 삼고 비난의 족쇄를 좀처럼 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많이 비교되는 장면이다.

인간 이성의 허구성을 여지없이 경멸하고 개탄하는 ‘걸리버 여행기’는 바로 사랑과 공감이 없는 현재 우리 시대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자살과 폭력, 무질서, 의혹과 분열이 만연하는 현 시점에서 현대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는 듯하다.

김경순<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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