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누가 성인인가

  • 입력 2013-10-02  |  수정 2013-10-02 07:25  |  발행일 2013-10-02 제23면
김경순 <영문학 박사>
김경순 <영문학 박사>

일반적으로 순교하였거나 생존 시에 훌륭한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지칭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구약성서 ‘열왕기하’ 7장에는 사마리아의 성문 밖에 있는 네 명의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관습에 의하면 문둥병자들은 그 병이 발견된 그날부터 자기 집에서 나와 가족과 격리되어 살아야 했다. 그들은 생업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버리는 음식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전쟁을 하던 동안에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사마리아의 성읍이 포위당한 상황에서 기근까지 겹쳐 자식들을 삶아 먹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마리아 성 밖에 있는 네 명의 문둥병자라고 해서 별다른 수가 있을 수 없었다. 문둥병자들은 성 밖에서 그렇게 앉아만 있다가는 굶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시리아 진영으로 구걸하기 위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뜻하지 않게 횡재를 만나 굶주린 배를 채운다. 그러나 그들은 포위된 성 안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사마리아의 배고픈 사람들과 공유하였다.

문둥병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바로 진정한 우정이며, 그것은 배려와 친절을 보여준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친절, 배려,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사랑의 개념에는 항상 사회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18세기 후반의 러시아 작가 라디시체프는 그의 에세이 ‘사랑에 대하여’에서 사랑은 유익한가, 유익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던지는데 이러한 물음 설정은 사랑의 존재론이 아니라 사랑의 사회적 유용론적 차원의 문제인 듯하다.

바로 네 명의 문둥병자는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타인들과의 보다 견실한 관계형성이 어려운 현 사회에서 비록 나에게, 나아가서는 우리에게는 짐이지만 그럼에도 배려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는 인간 공동체의 지형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