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릴케의 가을

  • 입력 2013-10-03  |  수정 2013-10-03 07:30  |  발행일 2013-10-03 제19면
[문화산책] 릴케의 가을
장정옥 <소설가>

가을은 키 큰 단풍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릴케를 만날 것 같은 계절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지난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가을을 맞아 릴케의 ‘가을날’을 읽어 보았다. 1902년에 릴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을 갖고 로댕을 만났다. 그때 로댕은 노동을 하는 것이 죽지 않고 사는 길이라며 노동을 강조했다. 그렇게 태어난 시가 ‘가을날’이었다. 릴케는 10편의 연작시를 쓰기 위해 병약한 몸을 이끌고 세상 곳곳을 떠돌았다. 무려 10년에 걸쳐 완성한 시가 바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두이노의 비가’다. 릴케만큼 철저히 시인이었던 사람도 드물고, 릴케만큼 문학에 온 정성을 바친 사람도 찾기 힘들다. 생애에 단 한 번, 루 살로메를 절절히 사랑한 날이 있지만 모든 예술작품이 고독에서 나온다고 토로할 만큼 그는 죽는 날까지 고독했다. 예술작품은 끝없는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평으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던가.

릴케는 또한 장미의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스위스 론강의 뮈조트 성에는 장미가 많았다. 릴케는 장미를 사랑했고 장미를 가꾸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으며, 장미에 심취해 시를 쓰고 사색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의 묘지에 ‘장미여,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 그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이여!’라고 릴케가 직접 지은 비문이 적혀 있다. 그는 지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려다 가시에 찔렸다. 백혈병을 앓던 그는 장미가시가 안겨준 패혈증이 악화되어 죽었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잠을 설치게 하던 복사열이 가시고, 광폭한 열기로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푸른 하늘 높이 치솟았다. 지구의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대기온도가 높아져 날이 갈수록 폭염과 태풍, 허리케인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온통 얼음으로 가득 찼던 북극과 남극의 모습을 영화에서만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구에 영원히 존재해주었으면 하는 것 세 가지를 고르라면 나는 북극의 얼음나라와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하늘과 뜨거운 태양의 적절한 공존이라고 말하겠다.

가을은 한 편의 시 같은 계절이다. 릴케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예술적인 체험은 성적 체험과 흡사하고, 성적 체험이 가진 외로움이나 괴로움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했다. 이 가을에 릴케의 서한집이나 ‘두이노의 비가’ 혹은 ‘말테의 수기’를 읽으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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