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감성에서 지성으로

  • 입력 2013-10-23  |  수정 2013-10-23 07:30  |  발행일 2013-10-23 제21면
[문화산책] 감성에서 지성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에서 재현되고 있듯이 모나리자라는 인물과 인물 뒤의 나무, 바위 등의 고딕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경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서 소개되는 인간 현실 또한 불가사의한 사건, 즉 가정교사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과거에 이미 죽은 전임자 가정교사를 목격하는 사건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소설에서 이러한 유령의 역할은 한정되어 나타난다. 오히려 가정교사가 어린아이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그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서 유령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림 ‘모나리자’, 소설 ‘나사의 회전’ 모두 주인공이 현실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에 사는 듯한 인상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또한 플라톤의 ‘동굴우화’, 즉 동굴 안에 갇힌 죄수들이 동굴 밖에 진정한 현실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죄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손과 발뿐만 아니라 머리도 묶여 그들의 시선은 오직 벽에만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벽에 비친 그림자는 죄수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벽에 비친 그림자, 즉 허구적 이미지를 보는 것만이 죄수들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비록 그들이 보는 것이 단순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후에 어떤 해방된 죄수가 다시 동굴로 돌아가 동료 죄수들을 해방시키려 하지만 그들은 해방되려 하지 않는다.

동굴우화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죄수들이 동굴의 벽에 비친 이미지만을 보는 것처럼 제한된, 왜곡된 관점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순진한 사고다. 죄수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정한 현실로 인식하는 것처럼, 또는 가정교사가 유령을 목격하고 억측과 자기기만적 방식으로 그러한 유령과의 조우를 현실로 인식하는 것처럼, 인간은 동굴 속에서 혹은 과거 속에서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그것을 진정한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누군가가 가면을 쓰고 있을 때 가면 뒤의 비밀스러운 그 무엇은 실제로 뒤에 존재하는 사람의 얼굴과 같은 구체적 실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옥죄고 위협하는 상상의 차원이듯이, 질서정연한 세계의 개념이 해체되는 듯한 지금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겐 감상적 이미지와 과거의 족쇄로부터 해방되어 빛을 향해 올라가는 영혼의 등정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김경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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