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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었다. 무대 제작실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 다급했던 움직임을 핏자국을 따라 읽을 수 있었다. 그날 새벽, 무대 제작실에는 마지막 몇 장의 합판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깜빡하던 찰나에 손가락은 이미 합판과 함께 톱 사이로 들어간 것이다. 급하게 손을 뺐지만 이미 피는 무서울 정도로 흘렀고, 근처 응급실로 다급히 옮겨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손가락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이다.
이것은 한 학생의 수업 결석 사유로 들은 이야기다. 그 후 그 학생은 퇴원하고 나서 아직 손을 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제작실에서 후배들을 도와준다고 한다. 휴먼 드라마와 같은 제작실 이야기는 어느새 나의 수업뿐만 아니라 학과 내에 단숨에 퍼졌다. 자연스럽게 제작실 핏자국의 주인공은 학과의 작은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웅! 우리는 이런 영웅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영웅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조상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 대학 신입생 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괴짜 선배들의 소설 같은 이야기. 직장에서는 성공한 상사의 영화 같은 이야기. 어쩌면 거의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듣고 들어서 이제는 완벽에 가깝게 상황을 재현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 수준에 이르고 나니, ‘아하’ 깨닫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재미나고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크고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아픔과 약점이 있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전설 같은 영웅 이야기들이 나의 삶 언저리 여기저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슴 가득 눈물을 머금고도 웃을 수 있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작은 에너지였다. 언제부턴가 그 영웅들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외로운 우리들만 남아있다.
짧은 역사의 미국은 존재하지 않은 슈퍼맨을 영웅으로 만들어 힘을 모았다. 우리에겐 외계에서 온 슈퍼맨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영웅이 돼야 하고,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영웅이 돼야 한다. 너와 내가 영웅이 돼 외롭지 않게 함께 걸어가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영웅을 찾아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힘겹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영웅인 것을 왜 잊고 있었던가. 그대는 영웅입니다.
정성희 <극단 콩나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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