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쥐들도 밤에는 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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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3  |  수정 2013-12-13 07:58  |  발행일 2013-12-13 제18면
[문화산책] 쥐들도 밤에는 잔단다

1998년 5월, 우리는 한 달 내내 열릴 하우스콘서트의 주제를 ‘가정’으로 정했다. 음악회 도중 한 출연자가 했던 깜짝 발언은 지금도 진한 잔향으로 남아있다. 필자의 가슴에 생생하게 남은 그날 사연의 제목은 ‘쥐들도 밤에는 잠잔다’였다. 다름 아닌 ‘희망’의 이야기였다. 그 날의 특별했던 느낌은 가장 힘이 들 때마다 한 번씩 불쑥불쑥 튀어나와 내게 ‘쉼’과 ‘희망’을 이야기하곤 한다.

다음 이야기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에 징집돼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그때 얻은 병으로 인해 결국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로 요절한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아주 짧은 단편이다.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 아홉 살짜리 위르겐은 폭격으로 허물어진 벽 사이에 깔려 있을, 어쩌면 벌써 주검이 되었을 네 살짜리 동생을 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밤에도 자지 못하며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동생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위르겐에게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자니 집으로 돌아가 걱정 말고 편히 쉴 것을 이야기한다. 위르겐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날이 어두워지면 토끼 한 마리를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위르겐으로 하여금 그가 다시 올 것을 기다리게 하고, 그가 가져다 줄 토끼를 위해 울타리를 만들 희망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그 토끼는 전쟁의 폐허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위르겐에게 삶을 일으키게 되는 한 줄기 빛으로 상징된다.

우리는 지금 지난 한 해 해왔던 많은 일을 정산하며 또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해야 하는 시간에 와 있다. 성탄절은 이미 백화점과 거리에 와 있는 듯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쉼과 희망은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걸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보르헤르트의 단편에서 ‘한 남자’가 토끼 한 마리로 위르겐에게 쉼과 희망을 선물했듯이 지금 이렇게 고단한 우리들에게 쉼을, 또한 희망을 선물할 ‘한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할 ‘한 남자’가 검을 들고 온 영웅이 아니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한 아기였다는 역설이 위로가 되는 지금 시간이다.

이상경<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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