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계란과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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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25  |  수정 2013-12-25 07:55  |  발행일 2013-12-25 제19면
20131225
우성문

지난 휴일 가족과 함께 영화 ‘변호인’을 봤다. 영화는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당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가 끝난 후 딸이 물었다. “정말로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영화 속 대학생들이 읽은 ‘불온서적’인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저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 TV를 켜니 민주노총에 사상 처음으로 공권력이 투입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영화 속 기억으로 있었던 과거를 2013년 12월 생생하게 TV를 통해 다시 봤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이 영화와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두 딸아이의 수많은 질문공세를 받아내야 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의미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선정했다고 한다. 도행역시는 중국의 사기(史記)와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등장하는 오자서가 친구 신포서에게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고대 중국에 어느 소잡이가 있었는데 소를 잡는 것이 도(道)의 경지에 올라 살과 뼈 사이의 틈새를 따라 칼날이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뼈와 살을 다치지 않고도 소를 잡았다고 한다. 소를 잡는데 어느 정도 숙달되면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고, 솜씨가 서툰 소잡이는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순리에 따르지 않고 억지로 뼈와 살을 깎아내느라 칼날이 닳아버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소를 잡는 순리를 알고 따르는 이 소잡이는 아무리 많은 소를 잡아도 칼이 처음 숫돌에 간 그대로 있더란다.

올해 우리사회는 ‘라면 상무’ 등의 사건(포스코에너지 A상무가 대한항공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에서 촉발된 갑을논쟁이 치열했다. 갑의 횡포에 대해 고발하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을의 무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바위는 죽은 것이고 계란은 산 것이어서 연약한 계란이 나중에 병아리가 되어 단단한 바위를 넘는다’고 했다.

계란이 바위를 이기는 것이 순리일까.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순리일까. 순리는 무엇이고 역사란 무엇인가. 숙취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연말에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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