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잊을 수 없는 선생님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04-28  |  수정 2014-04-28 07:49  |  발행일 2014-04-28 제23면
[문화산책] 잊을 수 없는 선생님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시든 자리에 햇순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4월의 마지막 주다. 영국의 어느 시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으나 그저 먼 나라 얘기로만 들었는데, 이제 우리에게도 4월은 더없이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어서 이 슬픔이 끝나고 희망의 새 달 5월을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감사의 달 5월을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분,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분이 있으니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이다. 졸업을 앞둔 2월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일찍 등교한 나는 국어책을 펴놓고 아침공부를 하고 있었다. 둘러보러 오신 선생님이 내 앞을 지나치며 책갈피에 무언가를 꽂아놓고 가셨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펼쳐보니 내지 못하고 있던 마지막 수업료 영수증이 아닌가!

여러 차례 서무실 직원으로부터 독촉을 받고 혼자 속을 끓이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사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선생님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켰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선생님과 마주치는 일조차 겁이 나 고마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었다. 대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선생님 앞에 나타나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리라는 막연한 결심만 하였다.

그런데 교사가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훌륭한 사람이라는 막연한 꿈은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혼자서 훌륭한 사람의 개념을 놓고 고민하기도 해보았다. 마지막 결론은 선생님이 베푼 은혜를 나도 제자들에게 베풀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그리 쉽지 않아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 또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전근될 때마다 신문을 훑어 새 부임지를 체크해두며 언제쯤 찾아뵐까를 고민하던 중, 선생님이 교육과학연구원에 계실 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용기를 내어 찾아뵈었다. 못난 제자를 보자마자 선생님은 덜컥 손을 잡으며 반겨주셨다. 참으로 오래, 마지막 수업료 영수증을 주시던 그날 아침부터 참아온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얼마 후 내가 소속된 직장에서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스승님을 모시고 ‘은사의 밤’을 개최했을 때, 선생님 내외분을 모셨다. 그때 선생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선생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선생님처럼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살아왔지만 나는 결코 선생님처럼 되지 못했다.

이재순<아동문학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