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일전(嶺日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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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16  |  수정 2014-05-16 07:34  |  발행일 2014-05-16 제18면

내게는 영남일보에 얽힌 소중한 기억이 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영남일보 덕분에 어려움을 넘기고 인생의 용기를 얻을 수 있던 사연이다.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을 가슴속에 담고만 살아왔는데, 마침 ‘문화산책’ 지면과의 인연을 계기로 풀어볼까 한다. 사사로운 일을 신문지면에 옮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세대가 지나온 삶의 풍경을 한번쯤 추억한다는 의미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라고 하는 첩첩 산골마을이다. 마을 뒤편에는 해발 1천300m가 넘는 수도산이 있고, 산중턱에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기도도량이 있었다. 이 암자에서 나의 부모님은 3년간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린 끝에 나를 얻었다고 한다.

어쨌든 물 맑고, 풍경 좋은 고향 마을에서 나는 부모님의 뒤를 이어 농사꾼이 되었다. 도시의 어떤 직업도 부러워 하지 않고, 오로지 내 고향을 무릉도원, 유토피아와 같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농촌 생활은 그리 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딸 셋의 교육이 걸림돌이었다. 유난히 머리가 좋았던 딸들은 좁은 산길을 매일 몇 시간이나 걸어서 등교하곤 했다.

보다 못한 나는 급기야 가족을 데리고 고향땅을 떠나 대구에 정착했다. 하지만 언제든 꼭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농사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살던 집과 밭은 그대로 두고 떠나왔다. 나는 말단 공직시험에 합격해 월급쟁이가 되었지만, 그 월급으로 일곱 식구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고향에 두고 온, 내게는 피와 살과도 같은 토지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바로 그때 영남일보에서 예기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영남일보 주최 제3회 독자수기공모에서 내가 최우수 당선자로 선정돼 자그마치 1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 돈은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500만원짜리 황소 한 마리 값도 넘는 금액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덩실덩실 춤까지 추면서 좋아라 했다. 물론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이 담긴 논밭도 팔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밭에 ‘영남일보밭’이라는 의미에서 ‘영일전(嶺日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고향에 갈 때마다 넓고 비옥한 나의 영일전 복판에 서서 영남일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조용히 새기곤 한다.

배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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