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글쓰기의 복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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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02  |  수정 2014-06-02 07:45  |  발행일 2014-06-02 제23면
안정인 <문학비평가>
안정인 <문학비평가>

소나무 두 그루와 그 왼편을 휘감아 돌아오는 개울 양편으로 풍성한 가채머리를 한 옛 여인네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막 그네에 왼발을 올리는 한 여인의 노랑 저고리와 빨강 치마는 전체적인 수묵화 채색에 대비하여 이색적으로 눈길을 끈다. 개울가에서 웃도리를 벗고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몸을 닦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바위 뒤편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는 두 동자승과 함께 구경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고 있다. 저기 언덕을 올라가는 여인네의 머리에 얹힌 보자기로 잘 싸맨 소쿠리엔 단오일에 즐겨먹는 수리취떡, 쑥떡, 망개떡이 들어 있으려나?

음력 오월오일 단오일은 수릿날·천중날이라고도 하며, 덥고 비가 잦은 계절에 드는 이 날 여인네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달아 액막이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사회 풍습으로 그네뛰기, 씨름, 탈춤, 가면극 등을 즐겼다고 한다. 사실 난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본 적이 없고 특별히 지킨 다른 단오절 의례에 대한 기억도 없다. 하지만 지금 난 남아있는 사료를 통해 옛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고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나름대로 새겨보고 있는 것이다. 서사는 상실한 세상을 복원하고 새로이 창조하는 기능이 있다.

최근 어르신들의 자서전 쓰기가 확산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인만 쓰는 자서전이 아니라 익명으로 살아온 너무나 평범한 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한참을 정신없이 걷다가 문득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긴 여정을 걸어오며 상처 없는 삶이 있겠는가? 하물며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짧다는 생각이 들 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은 더욱 짙을 듯하다. 글쓰기를 통해 서둘러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자체로 치유적 효과가 있을 듯하다. 또한 이미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에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표현력이 다소 서툰 어르신들을 위해 젊은이들이 도우미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하니, 세대간 소통을 통해 노령화 사회로 이행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에도 도움이 될 듯해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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