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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철 <수필가> |
나는 광복을 맞은 해인 1945년 4월1일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8월 광복이 이뤄졌으니 나의 첫 학교생활은 일제치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부르게 하는 노래를 창가(唱歌)라고 했다.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 중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하나 있다. 노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가사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보리 이삭 돋아나면 종달새 간다지. 떠나가는 그날에도 보리피리 불어주마’라는 가사의 곡이다. 보리밭을 소재로 한 이 노래를 수십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틈만 나면 즐겨 부른다.
내 고향은 성주군의 10개면 중에서 가장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금수면이다. 지금은 그 밭에 특수작물을 재배해서 수확을 많이 거두기도 하지만, 그 시절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초여름엔 보리를 수확하고, 그 다음엔 콩을 심어 가을에 콩을 수확했다. 한 마을에 한두 집 말고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보리가 익을 무렵엔 덜 익은 풋보리를 솥에 쪄서 끼니를 잇는 소위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고, 가을에 벼 수확을 할 때까지는 계속 꽁보리밥을 먹어야 했다.
보리밭에 늦은 봄이 되면 보리 이삭이 돋아나서 알맹이가 영글게 되는데 그때의 보리밭 풍경은 이 세상 어떤 걸작 그림보다 아름답다. 보리이삭이 익어가는 들판에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그것은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연초록과 노란 색깔이 적당히 배합되어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살아움직이는 멋진 풍경화가 되는 것이다. 황초록이 잔물결치는 보리의 파도, 보리밭 그림. 그것을 보는 나는 무아의 경지에 몰입되고 만다. 잔물결 일렁이는 황록색 보리 파도를 내려다보는 코발트색 창공에서 종달새가 이별이 아쉬운지 재잘거리는 노래소리! 그것은 나의 도원경(桃源境)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 친구와 보리밭길을 걸으며 학교에서 배운 보리밭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보리밭 고랑을 걸으며 ‘보리이삭 돋아나면 종달새 간다지~’라는 노래를 부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쁘게, 급작스럽게 바뀐 지금은 그 옛날의 보리밭 풍경을 찾기 어려워졌다. 보리밭 고랑을 걸을 기회도 좀처럼 없다. 그러나 보리를 수확하는 이 즈음이 되면, 내 기억 속에 최고의 풍경화로 각인된 어린날의 보리밭이 처연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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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기억 속 최고의 풍경화](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6/20140613.0102007322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