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누가 장대 위에 종이학을 걸어 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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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01   |  발행일 2014-07-01 제21면   |  수정 2014-07-01
[문화산책] 누가 장대 위에 종이학을 걸어 놓았나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센터 소장>

“누가 서대에 학을 걸어 놓았는가? 한강 북쪽에서 죽은 이의 혼을 부르기 어렵네.”

425년 전인 1589년, 예천에 사셨던 초간 권문해 선생이 김충이라는 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시이다. 한동안 예천에 살았던 김충 선생은 간혹 집 앞에 있는 장대에 종이학을 걸어두곤 했다. 종이학을 내걸었다는 것은 김충 선생 본인이 오늘은 집에 있으므로, 누구든지 들어와서 술도 한잔하고 시도 같이 읊자는 의미이다.

이렇게 김충 선생의 집에 종이학이 내걸리면 멀리 사는 친구들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술 한잔 나누면서 시도 읊고, 밤새도록 이야기도 나눴다. 이처럼 그 지역의 선비들과 멋있게 교유했던 김충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권문해 선생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못내 김충 선생이 그리워 위와 같은 시를 남겼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내가 아름다워야 하고, 만나는 사람들 역시 아름다워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고 세상을 나누며, 술잔 속에 비친 달을 노래하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문화이다. 노래와 시, 그림은 바로 이 같은 만남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문화의 기반에는 ‘사람’이 먼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화는 사람들이 만나는 방법이며, 사람이 마음을 나눈 결과물이기도 하다.

옛 아름다운 선비들의 교유는 그래서 멋스럽다. 김충 선생은 바로 이런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멋스럽게 만든 후 그 마음을 담아 종이학을 내걸고, 이 종이학을 보면서 만나게 될 멋스러운 사람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만나 밤새 시를 읊고 술을 한잔 나누면서, 서로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에 취해갔던 것이다. 김충 선생의 집 앞 장대 위에 걸린 종이학은 그런 만남을 기대하고 이루게 한 메신저였다.

현대인의 일상은 너무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음악을 듣고, 버스 타고 이동하면서 시를 읽는다.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를 제조하고, 2차와 3차까지 열심히 달려도 본다. 하지만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정서를 공유할 ‘사람’이 없고, 시를 나눌 ‘친구’도 없다. 술은 취하지만, 아름다운 ‘만남’도 없다. 문화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은 문화의 겉만 향유하면서 정작 ‘사람’은 잃어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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