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의리는 아교나 옻처럼 끈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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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5   |  발행일 2014-07-15 제20면   |  수정 2014-07-15
[문화산책] 의리는 아교나 옻처럼 끈끈하여라

“우리의 정은 형제와 같고, 의리는 아교나 옻처럼 끈끈하였네. 처음 그대의 부고를 듣고 미처 가서 이별하지 못하였으니, 유명을 달리한 지금 포복하는 것마저도 도리어 부끄럽기만 하네.”

이 글은 1582년 5월, 초간 권문해가 아름다운 정자 백석정에서 지은 만시(輓詩)의 일부이다. 만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면서 쓰는 시이다. 권문해는 평생 백석정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았던 친구 강명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 시를 썼다.

권문해는 음력 4월 오랜 친구 강명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친구의 집이 있는 문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찾은 곳은 강명원의 빈소가 차려진 그의 집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백석정이었다. 권문해는 이곳에 서서 먼저 간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목 놓아 한참을 통곡한다. 1년 전 마지막으로 강명원을 본 후 망자로 그를 대하게 된 찢어지는 마음을 백석정의 자연 속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권문해가 빈소보다 백석정을 먼저 찾은 이유는 그곳에 친구 강명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벗 강명원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며, 둘의 추억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강명원은 금천과 내성천, 그리고 낙동강이 만나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곳에 정자를 세웠다.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서로 다른 물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듯 여러 선비들과 만나 소통했다. 그들과 자연을 벗 삼아 한 잔의 술로 마음을 나누고 시로 인생을 노래했던 것이다. 강명원은 그러한 공간 백석정을 사랑했고, 권문해는 강명원의 이 같은 백석정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권문해는 자연을 향해 표표히 떠난 친구를 백석정의 자연과 함께 그리워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쉼 공간이자 공부 공간인 정자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자연을 잇는다. 정자는 그래서 단순하게 경치 좋은 곳에 존재하는 호화로운 양반들의 놀이 공간이 아니다. 살아서는 의리가 아교나 옻처럼 끈끈하고, 죽어서는 그리움이 포복하는 것마저도 부끄러운 사람관계를 만드는 곳이다. 정자를 가득 채운 자연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하나로 만들어진 물줄기가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정자가 한껏 머금고 있는 것은 바로 ‘멋스러운 만남’이다. 조선의 정자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멋스러운 만남’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호<한국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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