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印章과 품격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07-18  |  수정 2014-07-18 07:40  |  발행일 2014-07-18 제18면
[문화산책] 印章과 품격

정한숙(1922~97)의 소설 ‘전황당인보기’는 관직에 오른 친구에게 도장을 선물해 주었지만, 그의 아내가 도장 돌을 남의 손에 넘기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문방사우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미풍과 상실감에 대하여 ‘전황석’이라는 최고급 석인재를 통하여 이야기를 풀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처럼 관직에 오르거나 승진을 하게 되면 좋은 인장을 선물하는 미풍을 오늘날에는 접하기 어려워졌다.

명말청초의 예술가 만수기의 ‘인설(印說)’에서는 ‘구불가각(九不可刻)’이라 하여 새겨서는 안 될 9가지 경우를 들고 있다. 첫째, 자법(字法) 장법(章法)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새기지 않는다. 둘째, 인도(印刀)가 날카롭지 않으면 새기지 않는다. 셋째, 기분이 나지 않으면 새기지 않는다. 넷째, 어깨에 여유가 없으면 새기지 않는다. 다섯째, 속인에게는 새겨주지 않는다. 여섯째, 인(印)을 이해하지 않는 자에게는 새겨주지 않는다. 일곱째, 권세를 가지고 강청할 때 새겨주지 않는다. 여덟째, 간절히 부탁하지 않으면 새기지 않는다. 아홉째, 인문의 의미가 아름답지 않으면 새기지 않는다.

전각가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술가가 이렇게 도도했다간 작품을 한 점도 팔기 어렵겠지만, 전각예술의 격이 도도한 선비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양예술의 특징 중 하나가 예술의 가치를 품격으로 따지는 것이다. 새롭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보다는 품격으로 가치를 논한다. 인장도 마찬가지다. 인장을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사고의 깊이와 안목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2대 국새도 도장포에서 새긴 정도의 격이 떨어지는 국새를 쓰다가 1999년에서야 제대로 갖추었으나 또다시 4대 국새에서는 대사기극으로 국격에 큰 상처를 냈다.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다보면 단체의 직인이 전각가가 새긴 것은 아니더라도 나름 개성있게 만들려는 노력을 한 경우를 자주 본다. 반면에 대부분의 관인(官印)은 한글을 과도하게 구부려 가독이 매우 어려운 컴퓨터 서체로 되어 있다. 그러한 관인은 격이 있을 리 없다. 어차피 전통적인 가치에 따라 도장을 쓰는 것이라면 품격있고 제대로 된 것이 많이 쓰이길 희망한다.
권오준 <대구문화재단 문화사업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