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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호 <대경대 예체능대 학장> |
1950년대 파리 연극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앙티테아트르(반연극)는 등장인물과 시간과 공간이 현실성을 잃어 언어도 그 전달 능력을 상실하는 등 연극 자체가 행위의 의미를 해체당하는 부조리성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부조리한 상황은 자기의 희망 또는 기대와 현실이 어긋나는 것을 내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진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들 수 있다. 나는 이 두 작품을 통해 부조리극이 발생한 원인을 생각해보며 그 당시 사람들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주인공이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절망한다. 그러나 그 절망은 이상하게도 아름답고 시적이기까지 했다. 유진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에서는 주인공이 누가 오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문을 열어보는 장면이 도입부에 있다. 이 또한 묘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그게 누구인지 작품 속에서 얘기했을 거라고 했는데, 나는 작가도 알지 못한 고도가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대머리 여가수’에서 스미스 부인이 누가 온 듯이 자꾸만 문을 열어 보며 기다린 것도 바로 ‘행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학창시절에 지독한 유행병처럼 열심히 무대에 오르내리던 두 작품이 요즘 연극계에서 공연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행복’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닐까. 50년대를 살던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고 기다리던 것이 행복이었고, 그들의 열망으로 우리 시대에 행복이 드디어 왔다.
행복이란 크게 보면 세계의 복지와 소통에 연관이 있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개인에게 달려있다. 꿈꾸던 시대가 있고, 꿈을 이루는 시대도 있다. 50년대가 꿈꾸던 시대라면 지금 우리의 시대는 꿈을 이루는 시대다. 우리 모두의 공통된 꿈, 행복을 위해 국가와 세계가 노력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향유할 때다. 우리 다 같이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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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행복을 기다리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7/20140730.01021074350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