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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친구 두 명을 마주세우고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체벌이 종종 있었다. 선생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친구를 때리므로 처음에는 살짝 때리게 된다. 맞는 입장이 되면 상대가 자신보다 세게 때렸다고 생각하게 되고, 다음 친구를 때릴 때는 힘이 실리게 된다. 나중에는 명령이 아니라 자진해서 상대의 뺨을 온 힘을 다해 때리게 된다. 이후 적대감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사주했던 선생 대신 자신을 직접 때린 친구에게 향하게 된다.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세뇌시킨 방법 중 하나였던 이런 체벌은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있었다.
일제는 직접적으로 닦달하거나 괴롭히는 역할은 일본인이 아니라 같은 조선인을 시켰다. 조선인 산림주사나 순사들의 악명은 유명했고, 광복 이후에도 그 시절을 겪은 어른들은 조선인들이 더 악독했다고들 기억한다. 일본인은 그런 조선인들의 지나친 횡포를 말려준 점잖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제는 조선인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가르치며 자기들의 강제합병을 합리화했다. 광복 후 오랫동안 우리는 일제가 심어준 의식대로 ‘엽전’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비하하곤 했다.
1945년 8월15일, 마침내 국권을 되찾았다. 광복된 지도 69년이 되었지만 의식까지 완전히 되찾았는지는 되짚어 볼 때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하하기 좋아한다. 지식인들일수록 그 경향은 더 심하다. 그것을 비판의식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비하와 비판은 엄연히 다르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외국은 그렇게 훌륭한데 우리나라는 너무 부끄러워, 아직 멀었어’라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비난하는 것으로 여행기의 끝을 맺곤 한다. 부러울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역사, 환경을 잣대로 삼아 우리 자신을 폄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수한 우리의 역사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일제는 치밀한 연구 조사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였고, 우리는 그들이 심어준 식민역사관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또다시 광복절을 맞이했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악조건 하에서도 세계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저력과 국민의 높은 수준에 긍지와 희망을 가져도 될 때이다.
이하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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