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택의 절친 산악인 하찬수가 말하는 영화 ‘히말라야’속 진실과 뒷이야기②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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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01   |  발행일 2016-01-01 제42면   |  수정 2016-01-01
“줄거리 40% 정도가 실화인 것 같다…준호형·무택이 마지막 대화장면에 눈물”
■ 대구! 한국 알피니즘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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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무택의 계명대산악회 입회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하찬수씨가 팔공산 비사골 계명대산악회 추모바위를 찾아 동판에 새겨진 고인에게 술을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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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택 옷 색깔·동상 걸린 얼굴
오은선이 찍은 사진 그대로 재연

장민이 미끄러지면서 추락할 때
고글이 날아갔다고 나오지만
실제와 차이가 있다

등반하다 숨진 산악인 추모공원
팔공산에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영화 ‘히말라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04년 계명대산악회가 계명대 개교 50주년(2004.5.20.)을 맞아 지역 대학 최초로 단독 에베레스트(해발 8천848m) 원정대를 꾸렸다. 그해 5월18일 오후 1시30분 박무택 등반대장과 장민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 중 조난을 당해 박무택은 사망하고 장민은 실종됐다. 박무택의 무전을 받은 백준호 부대장이 둘을 구하기 위해 다시 등정했으나 백준호마저 실종됐다. 이듬해 엄홍길이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해 8천600m 부근에 돌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유품을 가족에게 돌려준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산사나이의 우정과 의리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엄홍길과 박무택은 특별한 사이다. 박무택은 1996년 가셔브룸 등정 후 엄홍길과 8천m 이상급 4좌를 함께 등반한다. 둘은 2000년 칸첸중가와 K2, 2001년엔 시샤팡마, 2002년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영화 속 비바크(Viwak·임시야영) 장면은 칸첸중가 등정 때다. 사선을 함께 넘었던 둘은 히말라야에서 뜨거운 우정을 나눴다. 영화 속은 아니지만 박무택과 하찬수도 산을 통해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구다.

하찬수(87·영문)는 6천m·7천m·8천m급을 각각 2좌 이상 등정한 전문 산악인이다. 그의 아내인 김순주씨 역시 1993년 지현옥, 최오순과 함께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하찬수는 박무택(87·화학)과 계명대산악회 입회 동기로 단짝이었으며 백준호(86·경영), 장민(96·수학)은 각각 선후배 사이다. 하찬수는 현재 탐세르쿠(네팔), 로카(스페인), 그로넬(이탈리아)과 제휴해 등산장비 수입 사업과 원정대 코디 사업을 하고 있다. 하찬수는 1993~94년엔 박무택과 세계 3대 악벽 가운데 하나인 인도 탈레이샤가르를, 1999년엔 엄홍길과 칸첸중가 북벽을, 2000년엔 백준호, 장민과 초오유 등정을 같이 했다. 그는 2004년 5월 계명대산악회가 조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히말라야로 달려가 사고를 수습했다.

▶영화 ‘히말라야’를 봤나. 감회가 남다를 텐데.

“산악인으로서 고무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줄거리 가운데 40% 정도가 실화인 것 같다. 세부적으로 과장되고 작위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준호 형이 무택이를 만나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는 눈물이 나더라. 무택이의 옷 색깔과 동상이 걸린 얼굴 등 실제 사진에서 봤던 무택이 시신 사진이 영화 속에 그대로 재연됐다.”

▶2004년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꾸려진 배경은 무엇인가.

“1989년 개교 35주년을 맞아 산악회 정재홍 지도교수(동산의료원 병리학과장)가 히말출리(7천893m) 원정을 갔다 고산병으로 돌아가신 후 한동안 해외원정 등반을 시도하지 않았다. 10여년이 지난 2000년 내가 백준호, 장민과 함께 초오유와 시샤팡마를 등정했다. 학교 측에 인사하러 갔더니 선물로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며 대단히 기뻐하더라. 2002년에 산악회 네팔봉사단이 생기면서 다시 해외원정 이야기가 나왔다. 2004년이 개교 50주년이라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이 함께 원정대를 꾸려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자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에베레스트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원정대 멤버는 누구였나.

“체육과 김상홍 교수(현 계명대 석좌교수)가 단장, 배해동 선배가 대장, 준호 형이 부대장, 무택이가 등반대장을 했다. 또 장민, 배두찬, 이정면, 박무원이 대원이었으며 여성 산악인 오은선이 합류했다.”

▶본인은 왜 빠졌나.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지만 회사 일로 매우 바빴던 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등반 계획과 예산을 짜는 데 도움을 줬다. 아쉬운 건 2003년 10월 말에야 학교에서 최종적으로 에베레스트 원정 지원 결정이 내려졌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훈련을 하고 3월에 발대식을 했다. 시간이 빠듯했다.”

▶언제 사고 소식을 들었나.

“5월19일 김상홍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 계명대 OB산악회 회원들이 급히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20일 혼자 현지로 가 일주일 안에 베이스캠프에 갔다. 배 단장과 박무원이 베이스에 있었고 이정면이 캠프3, 배두찬이 캠프4에 있었다.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사망·실종신고를 한 다음 김 교수와 유가족을 기다렸다.”

▶박무택과 장민, 백준호가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할 때 실제상황은 어떠했나.

“5월17일 밤 11시에 출발해 13시간30분을 걸어 18일 오후 1시30분에 무택이가 정상을 밟았다. 셰르파였던 누리도 함께 있었다. 20분 뒤에 장민이 거의 탈진한 상태로 정상에 도착했다. 사망 보고서에는 태극기, 학교 깃발, 스폰서업체 깃발 등을 들고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무택이가 고글을 벗었던 것으로 나온다. 눈에 빛이 반사돼 눈이 일시적으로 캄캄해지는 설맹(snow blindness)이 온 것이다. 설맹은 각막 손상 후 보통 1~2시간 안에 오는데 내려올 때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오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선 장민이 미끄러지면서 추락 과정에 고글이 날아갔다고 나오지만 실제와 차이가 있다. 2시에 하산을 하다 오후 3시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오후 6시에 무택이가 장민을 보내고 비바크를 하겠다는 교신이 왔다. 셰르파 누리도 이미 도망을 간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리도 동상으로 손가락 세 개를 잘라야 할 정도였다. 장민이 혼자 내려가다 실종됐고 오후 7시 준호 형이 보온병에 물을 넣어 셰르파 2명과 함께 최종캠프(8천300m)에 도착했으나 셰르파 2명이 하산해 버렸다. 준호 형이 캄캄한 밤을 뚫고 혼자 올라가 오후 1시경 무택이를 만났다.”

▶영화엔 박무택의 동상이 심하고 산소가 다 떨어졌으며 무전기 배터리도 방전됐다고 나온다.

“그랬다. 준호 형과 무택이가 만났다는 무전을 듣고 오은선이 19일 자정에 올라가 오전 9시에 무택이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오은선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오은선의 셰르파 역시 도망가고 오은선도 내려오다 8천300m에서 탈진해 쓰러져 스위스 등반대 셰르파가 구했다.”

▶박무택, 백준호, 장민과는 어떤 사이였나.

“무택이는 화학과, 난 영문과로 같은 해(87) 계명대산악회에 가입했다. 매주 주말이나 방학 때 합숙을 했다. 1년에 130일 정도는 같이 산에 있었다. 4학년 땐 같이 자취를 했다. 1993년 인도 탈레이샤가르 암벽등반을 하러 갔다 눈사태를 만나 6명이 함께 매몰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96년엔 손칠규·한승권·최병수 선배와 무택이와 함께 셰르파 없이 가셔브룸 원정을 갔다. 무택이는 안동 경일고 출신인데 말수가 적고 소탈하다. 의리와 무게감이 있으며 촌놈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1학년 때 무택이랑 로프 없이 대구 앞산 암벽을 몰래 오르다 선배들에게 들켜 3개월간 입산금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준호 형은 대건고 산악부 출신이다. ROTC 장교로 전역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고 파워가 넘친다. 내게 산을 가르쳐준 형으로 산악인 최초로 의사자로 선정됐다. 최근 대건고 동창회에서 모교에 준호 형 흉상을 세울 예정이라고 들었다. 민이는 계성고 산악부 출신으로 초오유, 시샤팡마에 같이 간 후배다. 성격이 명랑하고 밝았다.”

▶영화 속에 계명대가 ‘대명대’로 나오고 박무택과 엄홍길만 본명으로 나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극영화라 그랬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2004년 5월말 3일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려고 했는데 못 하고 49재때 오은선이 찍은 무택이의 사진이 유족에게 전달됐다.”

▶휴먼원정대가 꾸려진 경위는 무엇인가.

“무택이 시신을 에베레스트 등반 루트에 방치해서 되겠나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2004년 9월 손칠규, 엄홍길 선배 등이 휴먼원정대를 꾸리자고 했다. 처음 관을 준비해가자, 헬기로 운구하자는 등 여러 제안이 나왔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휴먼원정대는 2007년 한 방송국에서 ‘아! 에베레스트’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적이 있고 시나리오 작가인 심산씨가 동행하고 기록한 ‘엄홍길의 약속’이란 책에도 당시 스토리가 자세히 나와 있다. 영화에서 보듯 엄홍길 선배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인데도 무택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에 올랐다. 휴먼원정대에 계명대산악회 손칠규, 박근영, 김동민, 전경원, 김인환 등 5명이 동행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나 영화화됐다. 바라는 게 있다면.

“대구에서 고산등반을 하다 2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팔공산 수태골을 따라 올라가다 왼쪽 계곡 비사골에 고산 등반을 하다 숨진 계명대산악회 회원의 동판이 있다. 우리는 거기서 매년 한식을 전후해 재를 올린다. 팔공산에는 계명대산악회 말고도 학생산악회, 일반산악회 등에서 등반하다 조난을 당해 숨진 여러 산악회 회원의 동판이 있다. 북한산이나 설악산처럼 조난 산악인을 위한 작은 추모공원이라도 조성됐으면 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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