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한국 알피니즘의 메카 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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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01   |  발행일 2016-01-01 제41면   |  수정 2016-01-01
영화‘히말라야’를 계기로 본 도전·희생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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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산맥 칼라파타르(해발 5천550m)에서 바라본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8천848m). 수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길 열망하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상홍 계명대 석좌교수>


‘2004년 5월18일 오후 1시30분께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던 박무택씨(당시 36세·등반대장)와 장민씨(당시 28세)가 탈진, 교신이 끊기자 오후 7시께 동료대원 백준호씨(당시 38세)가 셰르파 2명과 함께 이들을 구하러 갔으나 이틀이 지난 20일 오후까지 교신이 두절됐습니다. 이 가운데 박 대장은 20일 낮 12시께 정상에서 200m가량 아래인 해발 8천700m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뉴스에 계명대 산악회(이하 산악회)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 산악계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를 오른 산악인 오은선씨. 그녀도 당시 같은 시기에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서 산악회와 장비를 공유 중이었다. 캠프 5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산을 올랐다. 그녀가 박 대장의 시신을 발견한 건 에베레스트 북동릉 루트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해발 8천750m 지점. 악명 높은 세컨드 스텝에 올라서자마자 로프에 매달려 있는 박 대장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해서 오르는 길밖에 없었다.

박무택의 시신은 이듬해 2005년 5월29일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휴먼 원정대에 의해 수습되었다. 이때 죽은 후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에베레스트 캠프를 방문했던 산악회 출신 한 기업인까지 고산병으로 숨졌다. 잇단 비극으로 산악회는 모금활동을 벌였다. 이후 히말라야 쪽을 쉬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계명대 산악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난해 히말라야 아말라블람 원정에 성공한다. 슬픔은 점차 ‘희망톤’으로 익어갔다.

박무택과 백준호 또래인 윤제균 감독도 그들을 잊을 수 없었다. 3년에 걸쳐 준비작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16일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빙장(氷葬)된 3명의 대구 출신 산악인을 위한 헌정 영화 ‘히말라야’를 제작했다. 누적 관객수 1천만명을 향해 항진 중이다.

먹먹한 가슴으로 영화를 봤다. 히말라야 고봉 16좌를 완등한 스타급 산악인 엄홍길의 스토리일까? 곱씹어보면 ‘대구발 알피니즘’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 영화이기도 했다. ‘해발 8천m 이상의 산에서는 모든 것이 너의 책임이다. 결코 남을 탓하지 마라.’ 8천m 고봉, 즉 ‘죽음의 지대’에서만 적용되는 알피니스트들의 ‘불문율’이다. 한국 산악 사상 첫 의사자가 된 백준호는 그 불문율을 깨버렸다.

이번 영화로 인해 1963년 창립된 계명대 산악회의 위상이 새롭게 각인됐다. 산악회의 투혼, 그 뒤에는 대한민국 산악인의 자존심 같은 ‘팔공산 산악정신’이 수호천사처럼 버티고 서있다. 지금 팔공산 비사골과 바위골에는 세 사람의 추모동판 등 산악에서 희생된 향토 산악인의 영령이 잠자고 있다. 86년부터 지금까지 25명의 지역 출신 알피니스트가 히말라야에서 희생당했다. 이번 기회에 대구의 산악운동사는 물론 한국 알피니즘의 어제와 오늘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제대로 된 ‘산악추모공원’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다.

평생 ‘고산병’이 뭔지 알 필요도 없고 경험할 기회도 없는 소시민. 그들에게 해발 8천m급 이야기는 실감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한 편의 ‘동화’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반인은 알피니스트의 무용담을 더 쉽게 희화화해 버릴 수 있다.

위클리포유는 병신년 신년 특집호를 이례적으로 히말라야에 아로새긴 ‘대구의 알피니즘’으로 정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산악회 대원의 면면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점도 있어 영화와 다른 실제 상황을 알아봤다. 또한 77년 고상돈 대원에 앞서 한국 첫 에베레스트 등정 산악인으로 기록될 뻔한 대구 출신 알피니스트 1호, 일흔셋의 박상열 대원의 남다른 감회, 대건고 총동창회에서 추진 중인 백준호 대원에 대한 흉상 건립 이야기 등을 담아봤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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