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환각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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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8면   |  수정 2017-11-10
20171110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미국인 부(父)와 한국인 모(母) 사이에서 태어나 국내 외국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 입학허가까지 받았던 청년이 가족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고인은 “집안 전체에 여러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가 나를 조종했다”며 “어머니와 이모를 로봇으로 생각하고 찔렀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하니, 황망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청년은 사건 열흘 전 대전의 한 여관에서 친구가 준 마약 LSD를 2회 투약했다. LSD는 필로폰의 300배에 달하는 강력한 환각제다. 이것을 투약하면 ‘환각제 지속성 지각장애’를 일으켜 효과가 수개월에서 1년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같은 마약을 투약한 피고인의 살인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례도 있다.

1심은 피고인이 심신상실이 아닌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책임을 조각하지 않았고 살인죄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반면 대전고등법원은 지난달 12일 강력한 LSD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저지른 피고인의 살인 등 행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모를 살해한 존속살인, 이모를 살해한 보통살인, 출동 경찰관을 폭행한 공무집행방해죄를 모두 무죄로 판결하고 다만 심신이 정상인 상태에서 마약을 투약한 혐의만 유죄로 판단, 중요부분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은 마약류관리법위반죄로 징역 2년에 처해졌고, 재범의 위험성으로 인해 치료감호 처분을 함께 받게 됐다.

형법 제10조 제1항의 심신상실이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대표적 책임조각사유다. 이 경우 무죄가 선고된다.

동법 제10조 제2항의 심신미약은 책임을 조각하는 사유가 아니라 감경하는 것이어서 죄를 인정하되 형을 감경하는 사유다. 극도의 흥분상태·약물중독상태에서 비이성적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행위는 책임을 감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한 행위는 항상 무죄가 돼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법원의 공보내용을 보면, 이 판결은 마약투약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인 점과 더불어 피고인이 평소 모범적 생활을 해왔으며 가족과도 사이가 좋아 범죄의 인식이 없었다고 볼 특수성이 드러난다. 처벌을 피한 예외적 사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안을 바꾸어 만약 마약을 하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도 마약을 투약했고, 투약상태에서는 별달리 살인의 고의가 없었지만 결국 심신을 제어하지 못해 살인하게 된 것이라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는 결과에 대한 고의는 없지만 원인에 있어서는 과실있는 행위가 된다. 형법이론은 이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 하고, 살인죄의 성립은 어려우나 과실치사죄는 성립될 수 있다(일본최고재판소 1951. 1. 17.자 판결, 刑集 5-1, 형법판례백선 1, 106).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심신상실도 심신미약도 아니어서 책임의 조각, 감경사유로 삼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대판 92도999 판결).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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