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출신 항일투사 박열이 1974년 1월17일 북한에서 사망했다. 박열은 1919년 일본에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뛰어들었고, 1921년 사회주의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했다. 1922년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한 뒤 1923년 동지이자 애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왕 히로히토 암살을 실행하려다 체포됐다. 이 일로 1926년 3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같은 해 4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가네코는 그해 7월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열은 1945년 광복과 함께 22년2개월 만에 석방된 뒤 조선건설동맹을 조직해 재일거류민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귀국한 박열은 6·25전쟁 때 납북됐다. 저서로는 ‘신조선혁명론’이 있다. 박열의 일대기는 2017년 영화로 제작돼 235만명의 관객을 유치했다. 정부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의 고향 문경 마성면에는 복원된 생가, 가네코 묘소 등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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