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유 있는 무덤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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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4   |  발행일 2019-11-04 제31면   |  수정 2019-11-04
[월요칼럼] 이유 있는 무덤
원도혁 논설위원

어린 시절을 보낸 경남 고성의 산골 마을은 푸근하고 정겨운 동네였다. 산비탈 고지대에 옹기종기 자리한 집은 기껏 13호에 불과했고, 다들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궁핍한 처지였다. 하지만 이웃 간 적은 음식도 나눠먹고 살갑게 오갔다. 어느 집에서 장거리를 많이 봐 온다거나 대처에 나간 자녀들이 오는 날은 온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다 알았다. 오늘은 누구네 제사이고 내일은 누구 생일이며 하는 내역이었다. 오랜 기간 서로 교류하고 나눠 먹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벼농사와 고구마·콩·팥·호박 등 밭작물 농사에 매달렸다. 먹고 남는 수확물은 읍내 시장에 내다 팔아 생선 등 다른 식재료와 생필품을 마련했다. 사는 수준이 엇비슷했지만 마을의 맨 꼭대기집은 인근에서 드물게 큰 부자여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50마지기(한 마지기는 200평)가 넘는 논에다 밭농사도 수천평 됐으며, 2만평이 넘는 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농가 재산 목록 1호는 농사일하는 소였다. 집집마다 두세마리 정도는 키우고 있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소의 먹이인 풀베기가 집안 남자들의 주업이었다. 닭도 수십마리 키웠는데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던 계란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부족한 먹거리였지만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어서 생선 등 해산물은 그나마 자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봄 멸치에 여름 갈치, 가을 전어 등 철마다 제공되는 생선은 소중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기 쉬운 산골 식단에 없어서는 안될 영양소를 공급했으니 말이다.

마을의 맨 꼭대기집은 부자답게 고급 품종의 개를 키웠다. 그런데 키우는 개마다 엄청 사나워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상대적으로 왕래가 잦은 친척에게도 그 개들은 무자비하게 짖어대며 사납게 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하필 그집 개들만 왜 그렇게 별난지 의아해했다. 온갖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필자도 온갖 정보를 동원해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렸지만 한동안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단연코 생선 때문이었다. 바깥 주인이 생선을 좋아해서 고등어와 조기 등 고급생선을 자주 사 먹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주인의 식성이 특이해서 머리와 뼈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어쩌다 씹히는 뼈나 내장 부산물은 계란을 낳아주는 닭에게 돌아갔다. 풍기는 비린 냄새에 생선 뼈나 대가리가 돌아오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던 개로서는 대 실망이었던 것이다.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감이 더 큰 법이다. 그렇다고 주인을 공격할 수도 없으니 화풀이 대상은 자연히 마을 주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선 냄새만 맡고 돌아오는 게 없는 날들이 이어지자 이집 개들은 애꿎은 마을 주민에게 울분을 폭발시켰으리란 게 나의 합리적 의심이다.

꼭대기 집 주인은 장수했다. 연상이었던 안주인은 85세까지 살았고, 바깥주인은 생선뼈를 많이 먹은 덕분인지 노년에도 치아의 보전상태가 거의 온전했다. 반드시 백수 하실 분이라는 주민의 평가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못한 변고에 의해 80대 중반에 돌아가셨다. 70대 후반 어느 여름날 집 뒤 음달 골짝논에서 벤 풀을 지게에 지고 맨발로 내려오다가 그만 독사를 밟아 버렸다. 산속 개구리가 많은 도랑길에서 독사를 밟은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장화를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닌 게 두번째 잘못이다. 세번째 잘못은 독사에 물린 다리가 퉁퉁 부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푼 돈이 아까웠던 이 수전노 어르신은 약초 등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면서 겨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 독사의 독이 간에 치명타를 입혔는지, 간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뒤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 딱한 노릇을 보고 들은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장례를 치르고 음달 소나무숲에 묻힐 때 딸들의 통곡소리가 마을을 덮었다. 그렇게 치아를 아끼고 몸을 위한 섭생을 했지만, 한순간 물거품이었다. ‘세상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을 괴롭힌 꼭대기집 개들의 저항에도, 부자 어르신의 무덤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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