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삼청교육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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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9   |  발행일 2019-11-09 제23면   |  수정 2019-11-09
[토요단상] 삼청교육대의 추억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오래전 선거에서 낙선한 한 지인은 칩거 후 한 모임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선거에 나서게 되면 조직을 꾸리게 되는데, 대부분 자신의 지지자들로 주위가 둘러싸이게 된다.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지지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당선될 것이라는 말과 암시를 쏟아내고, 그렇게 되면 마치 대부분이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자아팽창을 경험하게 되고 그 느낌을 놓고 싶지 않게 된다. 객관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잘못된 판단이 이어진다. 결국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객관성은 잔인한 현실에 상처받은 탕아처럼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이렇게 표현했었다.

한 야당대표가 귀하게 모시는 분이라고 표현까지 했던 전직 장성 한 분이 자신을 갑질로 고발한 한 시민단체 대표를 ‘삼청교육대’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자신이 자청해서 연 기자회견에서 말이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21세기에 총선출마를 선언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농담이라도 저런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가 싶은데 아직도 저런 말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후의 인터뷰에서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한 걸로 봐서는 그 분은 정말 농담조로 한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삼청교육대를 말한 이유는 그 정도의 유격훈련과 극기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유를 하고 싶다면 논산훈련소와 같은 훈련기관을 언급해도 되는데 굳이 삼청교육대를 언급한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의식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 시설이 군사정권 동안 정권에 거슬리는 자들과 길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부랑자들을 부당하게 취급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정말 의미 있는 교화시설이었다고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집단사고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 없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오랫동안 모여 있으면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마치 대다수가 인정하는 사실인 양 믿어진다. 이것들과 궤를 같이 하는 잘못된 믿음들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이 빨갱이집단이 벌인 난동이라든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었다는 헛소리들이다.

집단사고는 맹목적인 특징이 있다. 어떤 흐름이 생겨나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따르게 되면서 집단내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프랑스 철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개인이 집단에 속하게 되면 개성은 사라지고 집단의 사상이 지배하게 된다. 집단의 행위에는 이의가 없으며 감정적이고 지능이 낮다”고 말했다.

또한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경영학 교수인 스티븐 로빈스는 집단사유 현상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집단의 구성원은 자신들이 세운 가설에 반박하는 의견을 어떻게든 자기 집단에 유리하도록 합리화시킨다. 둘째, 집단의 공통된 관점을 의심하는 이들, 또는 모두가 신봉하는 논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가한다. 셋째, 의구심이나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침묵을 유지하며, 심지어 자기 생각의 중요성을 깎아내림으로써 집단의 관점을 거슬리지 않으려 한다. 넷째, 누군가 침묵하면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것을 찬성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이의가 없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소수의 생각을 다수의 의견이라고 받아들이고 자신있게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자신들의 지지세력이 모이고 강화된다는 이득도 큰 동기로 작용한다.

이유야 어쨌건 삼청교육대라는 달갑지 않은 혹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추억을 소환해준 덕분에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것이다. 택배상자에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이 들어있다면 취급주의(fragile)를 붙이듯이 민주주의는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 남미와 아시아의 몇몇 나라처럼 역사의 후퇴가 이루어진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다시 소멸될 수 있으며 삼청교육대와 같은 시설은 또 들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주니 오히려 그분이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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