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휘발유 엔진’ 대세로…소상공인은 매출 고전

  • 임훈,오주석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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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4 07:23  |  수정 2019-12-14 07:24  |  발행일 2019-12-14 제3면
[토요일&] 대구 경제지형 바꾸는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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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지면서 자동차 판매와 건축, 생활경제 등 미세먼지 확산에 따른 경제 전반의 트렌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대구도심 전경. <영남일보 DB>

겨울철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는 날이 잦아졌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가 오는 이른바 ‘3한(寒)4미(微)’ 패턴이 생기면서 경제 트렌드마저 바꾸고 있다. 공기 중 작은 입자로 떠다니는 미세먼지 탓에 정부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데다 맑은 공기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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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소비패턴을 바꾸다

미세먼지로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자동차 부문. 내연기관 자동차는 배기가스 배출로 그동안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왔다. 이 때문에 유럽 자동차 선진국에선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 6’을 적용하는 등 환경보호를 위한 발빠른 대응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노후 경유차 등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수도권 진입이 제한되고 있다. 대구시도 내년 4월부터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때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을 단속할 계획이다.

소비자 역시 환경규제가 없는 차량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최근 국산 3000cc급 경유 SUV 차량을 처분하고,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미국산 포드 F-150 픽업트럭을 구입한 남모씨(50·동구 신암동)는 “노후 경유차는 도심진입 제한 대상인 데다, 자동차 검사 때도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기 힘들어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휘발유 차량을 구입했다. 연비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는 차량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SUV 차량의 탈(脫)경유엔진 바람은 수입차량에서 특히 거세다. 올해 판매를 개시한 쉐보레의 미국산 정통 픽업트럭 콜로라도 역시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고 있지만 초도물량 2천대를 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구에서 미국산 SUV 차량을 판매 중인 A대리점 관계자는 “휘발유와 경유엔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차량의 경우 최근 휘발유 엔진을 선택하는 고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4~5년 전만 해도 저속영역에서 힘이 좋은 경유엔진 선호 고객이 많았지만, 경유차의 경우 향후 환경규제를 받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휘발유 엔진 모델을 구입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의 전기차 보급대수도 급증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6년 314대에 불과했던 대구의 전기차 보급은 2017년 2천127대, 2018년 5천563대, 2019년 12월12일 현재까지 4천600대로 집계되는 등 총 1만1천604대의 전기차가 최근 4년간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은 대기환경 개선 및 지역 자동차 산업 부흥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비는 물론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경향도 전기차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축 트렌드 변화시킨 미세먼지

미세먼지는 건축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시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2016년 10월31일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받는 공동주택에 대해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현재 대구지역 500세대 공동주택의 경우 주차대수는 세대수의 1.3배 기준인 650대다. 이럴 경우 7대의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돼야 한다. 12월 현재 기준으로 주차대수 100면 당 충전소 1개소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이나 세종의 경우 200면당 전기차 충전소 1개소를 설치하고 있어 향후 미세먼지에 대한 대구시의 대책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공기정화 시스템도 신규 아파트 단지의 필수 옵션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건설사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대처하기 위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첨단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역 H건설사 역시 아파트에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공기정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초미세먼지를 99%까지 걸러주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홈네트워크를 통해 외부에서도 해당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다.

지역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가족 중심적 문화가 확산되면서 실내 주거공간의 쾌적함을 중요시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이에 건설업체들도 보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한 미세먼지 저감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과 결합한 지능형 미세먼지 저감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전통시장 등 매출엔 악영향

미세먼지는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의 매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3시 대구 칠성시장 앞. 마스크를 착용한 주차안내원이 고객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날 대구는 오후 1시 기준 초미세먼지 농도 82㎍/㎥를 기록,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효된 상황이었다. 주차안내원 임종규씨(54·수성구 범물동)는 “목이 칼칼하고 몸이 안 좋다.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하지만 불편한 점이 많다”며 답답해했다. 칠성시장 상인들은 미세먼지가 매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의 경우 생물 판매가 많아 일반 포장상품에 비해 미세먼지 노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칠성시장에서 묵을 파는 이기숙씨(여·57)는 “묵이나 해파리 등을 매대에 내놓고 판매하는데, 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손님 방문이 줄어든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이씨는 “시장은 식자재 등을 파는 가게가 많은데, 미세먼지가 심하면 식당의 상품주문이 줄어 시장 상인들의 매출도 20%가량 줄어드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날 칠성시장 일원은 한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손님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고 있었다. 칠성시장을 찾은 장루시아씨(여·77·수성구 시지동)는 “미세먼지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기가 꺼려진다. 멀리서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샀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시장 현대화로 거리에 지붕을 조성하고 상품에 랩을 씌우는 방법이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상인들의 전언이다. 박재청 대구칠성종합시장상인연합회 회장은 “미세먼지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시장상인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공공기관 차량 2부제로 관공서 인근 식당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밀집한 동구 대구혁신도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류모씨(41)는 “차량 2부제로 손님들이 자가용 이용을 포기하고 구내식당 등을 이용하면서, 미세먼지가 심할 때마다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등 소비재 시장에서도 미세먼지에 따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동구에서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송모씨(50)는 “겨울에는 MTB(산악자전거) 판매가 상대적으로 많아 비수기인 겨울을 날 수 있었지만, 최근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MTB 매출마저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줄어든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매장 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스마트 롤러’와 ‘평롤러’ 등의 장비를 갖추고 고객을 유치 중이다.

◆관련 산업 부흥 계기로 삼아야

한편,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를 지역산업 부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광주시의 경우 ‘친환경 공기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LG전자까지 해당 사업에 참여하면서 이른바 ‘공기산업’을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대구시 산하 기업지원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구에도 필터 생산업체 등 미세먼지에 대응할 수 있는 관련 기업이 많지만, 대구시 및 지역산업계의 지속적 관심이 없다면 지역기업들이 ‘공기산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오주석 수습기자 farbrother@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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